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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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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독뉴스| 작성일2024-11-12 | 조회조회수 : 3,08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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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 순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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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구마가와 마루: 아펜젤러선교사와 동행했던 조사 조한규 그리고 정신여학교 여학생이 인천에서 목포로 가기위해 승선했던 선박 이 배는 1902년 6월11일 밤 10시견 어청도 인근 해역에서 기소가와 마루와 충돌하여 침몰했다. 아펜젤러선교사도 이 배와 함께 수장되었다)
 


기독뉴스는 2015년 한국선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시리즈를 내보내고 있다. 이미 한국 최초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의 발자취를 찾아보았다. 이번 호에는 한국 최초의 성경전래와 기념관,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을 찾아가 본다.<편집자 주>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


2012년 6월 11일,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청연회 아펜젤러순직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르고 파송한 미국 드류대학교, 랭커스터 제일교회 관계자, 한국 감리교단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펜젤러선교사 순직 110주년 추모 예배와 기념관 개관식을 갖게 되었다. 이곳은 육지에서 아펜젤러 선교사가 순직한 장소인 어청도 바다가 보이는 유일한 곳이며, 서천군이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한 곳이다.


기념관은 아펜젤러순직기념관과 가우처기념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아펜젤러순직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건물면적 350㎡)로써 주 전시실인 지하 1층(뱃머리 부분)에는 선교 초기 역사관련 전시관이, 1층과 2층에는 파송선교 역사 자료실과 특별전시관이 조성되어 있으며 3층에는 아펜젤러선교사의 순직장소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꾸며져 있다.


가우처기념관은 지상 2층의 전시카페 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기념관 내에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존 가우처 관련 진본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직접 로스팅한 커피와 더불어 선교사들의 삶을 생각해 보며 쉼을 얻을 수 있는 카페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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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는 1885년(고종 22년) 미국감리교 선교사로 조선에 와 인천 내리교회, 정동제일교회 등 한국의 첫 감리교회들을 세웠고 성경 한국어 번역사업과 선교활동을 펼치고 배재학당을 설립한 한국 근대교육의 모습을 바꿔 놓은 인물이였으나, 그동안 무덤 하나 남기지 않고 서해안에 수장되고 말았다. 그는 목포에서 있었던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902년 6월 11일 배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에서 목포로 가던 중 기념관 위치에서 40여㎞ 떨어진 어청도 인근에서 선박 충돌사고로 순직했다. 특별히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 전망대는 아펜젤러 순직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로, 망원경을 통해 조망할 수 있으며, 시신도 남기지 않은 '처음 선교사 아펜젤러'의 정신과 신앙을 깊이 있게 묵상할 수 있는 최적지라 할 수 있다.


아펜젤러 기념관은 충남 서천군 서면 서인로 225번길 61에 있으며 한국최초성경전래지 기념관과 근접해 있어 방문자들은 두 기념관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어서 좋다.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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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 맥스웰 대령이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책을 선물했다


순조(純祖)실록 권19[국사편찬위원회 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제48권], 순조16(丙子, 1816년)년 7월19일 병인(丙寅)에 보면 충청수사(忠淸水使) 이재홍(李載弘)이 충청도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외국배) 2척이 표류해 온 일을 다음과 같이 장계로서 보고하고 있다.


1816년 9월4일과 5일(음7월18일과 19일), 영국의 함선 알세스트호(함장 Murry Maxwell)와 Lyra호(함장 Basil Hall)가 비인현 마량진 앞 갈곶에 도착했다. 이 배는 이 해 영국 정부가 중국에 파견하는 사신 암허스트(Jeffrey William Pitt Amherst)를 태우고 중국에 도착, 이들 일행을 광동에 내려놓고 대기하는 동안 본국 훈령에 따라 조선의 서해안일대를 탐험하면서 해도(바다지도)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이들 두척의 배가 마량진에 도착했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趙大福)과 비인현감 이승렬(李升烈)이 문정(問情/방문)차 두 배에 승선, 검사하고 몇 권의 책과 문서를 받았는데 그 받은 책 가운데 한 권이 성경이었다.


부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9월 4일에는 조대복과 이승렬이 몇몇 종자를 거느리고 리라호와 알세스트호를 차례로 문정하였고, 그 이튿날에는 새벽부터 어제의 그 조대복과 이승렬이 문정했는데 이날 그들은 선실에서 서가에 가득한 책들과 지구의 천구의 등을 보면서 신기한 태도를 보였다. 이승렬은 아담하게 정리된 서가를 보면서 그 중 책 한 권을 뽑아 갖기를 원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영백과사전 전질 중의 한 권이어서 주지 못하고 그 대신 다른 책 한 권을 주었으며, 이승렬은 그 답례품으로 부채를 건네주었다.


▲알세스트 함장 맥스웰


해도 작성을 끝낸 이들이 출항하려 할 때 첨사 조대복은 며칠 더 기다리면 조정의 답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리라호가 이미 출발했기 때문에 알세스트의 함장 맥스웰은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쉬워하는 첨사에게 맥스웰은 책 한권을 선물로 남기고 떠났는데, 그것이 성경이었다. 조대복은 아무런 선물도 받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영어성경]을 주려 했을 때 거절했다. 그러나 선실을 떠날 때 맥스웰이 다시 권했더니 사양하지 않고 감사한 표정으로 받았다고 한다. 첨사에게 성경을 준 장면에 관해 영국측 기록에는 “그는 어떠한 선물도 받으려 하지 않았지마는 우리의 친절에 무척 기뻐하고 어느 정도 속이 풀렸다. 우리가 성경을 그에게 주었더니 감사한 모양으로 받아 가지고 퍽 우정적인 작별을 고하였다(한국최초성경유입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 성경유입참고문헌 참고)”고 했다.


▲성경이 전해졌던 조선 순조 때의 시대적 상황


조선시대 순조는 정조14년(1790년)에 태어나 11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나이가 너무 어려 대왕대비인 정순황후가 수렴청정을 했다. 1804년 대비의 수렴청정이 끝나자 김조순을 비롯한 안동김씨 가문의 세도정치가 시작됐다. 1801년에는 사교를 금한다는 명분으로 200여 명의 천주교신자들이 학살됐고 천주교 탄압은 계속되어 1815년에는 경상/충청/강원도의 천주교 신자들을 학살한 을해박해가 일어났다. 1827년에는 충청/전라도의 교인들을 검거해 혹독한 탄압을 가했다.


▲성경전수의 역사적 위치


1816년 9월 마량진에 일시 정박한 영국함선은 성경을 전해주고 떠났다. 그 성경의 전수가 한국사 및 한국기독교사에서 갖고 있는 역사적인 위치는 어떤 것일까? 이 점은 한국에 기독교의 전래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마량진사건 이전에 성경이 조선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한다는 것을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소개되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연구나 기록의 발견으로 봐서, 마량진 사건은 기록으로 확인된, 한국 최초의 성경전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전수와 한국 기독교의 출발


▪귀출라프목사


19세기에 들어서서 몇 차례에 걸쳐 유럽 계통의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을 찾았다. 1832년 충남 원산도를 찾은 독일인 칼 귀츨라프 목사와, 1865년과 그 이듬해에 조선에 왔다가 죽임을 당한 영국인 토머스 목사가 그 좋은 예다. 귀츨라프는 1832년 충남 원산도에 상륙하여 조선 조정에 교육을 청하였다가 거절당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역성경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며 기독교를 전파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감자 심는 법과 포도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주기도문을 언문 번역하고 약 1개월만에 마카오로 돌아갔다. 그는 이 때의 항해경험을《Journal of three voyages along the coast of China in 1831, 1832 and 1833》으로 남겼다. 그가 한역성경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는 이미 모리슨이 와서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 출판했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선교사


토마스 선교사는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상해로 왔으나 그의 아내 캐럴라인의 죽음과 상해주재선교책임자 무어헤드와의 불화로 런던 선교회를 사임, 잠시 해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뒤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윌리암슨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1865년 9월 13일 한국에 와서 2개월 반 동안 한문 성경을 나누어주고 복음을 전했다. 그는 이듬해 1866년 8월,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에 승선, 향도 자격으로 평양에 들어왔으나 9월5일 27세의 나이로 대동강가에서 피를 흘렸다. 토머스 목사는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박해 정책이 추진되고 있을 때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 이 땅에서 피를 흘린 영국 선교사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그가 가져온 한문성경을 조선인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가 조선에 왔을 때엔 중국에서는 이미 모리슨 역 성경과 문리 역 성경 등 몇종류의 번역성경이 있었다. 그가 죽음에 앞서 남긴 성경이 그 뒤 선교사의 도래 후에 그 자손들에 의해 선교사 마펫과의 접촉을 가능하게 했다는 전언이 있다. 한국의 개신교사가 시작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1865년 4월5일 부활 주일에 조선에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등 복음선교사들에 의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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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래지 기념관


충청남도 서천군 서인로 89-16에 있는 한국최초 성경전래 기념관은 성경 전래의 역사를 연구, 전시교육, 체험하여 국가와 세대를 넘어 바른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여 2016년 9월5일 한국최초 성경전래 200주년을 맞아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기념관 건물은 연면적 1374㎡ (약415평)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꾸며져 있으며 1,2층은 전시관 3층은 전망 카페 4층 다목적실 (예배당)이 있고 전시관에는 영국에서 제작된 킹제임스 바이블 원본과 시기별 한국어 성경 번역본 등이 전시돼 있으며 기념사진을 찍을수 있는 포토 존도 있다. 기념관에서 400㎡ 떨어진 곳에서는 성경 전래 기념비와 영국 범선 조형물 등이 비치된 9920㎡ (약 3000평) 규모의 야외 기념공원도 있다.


▲한국최초 성경전래 기념관 연혁


1.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 사업회 발족(2003.5.27)

2. 마량진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학술 세미나 및 선언식(2003.10.14)(이만열 박사 ,연규홍 교수, 박용규교수, 박대헌관장 )

3. 마량진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학술 세미나 (2004.9.20 서울 새문안 교회) (이만열 박사, 민경배 박사, 김홍기 교수, 박용규 교수, 연규홍 교수, 박응규 박사, 박명수 박사)

4. 한.영 문화교류 학술 세미나(2005.9 서천군민회관) (제임스 그레이슨 박사, 박응규 박사, 이호우 박사, 월리암 퓨리턴 박사)

5. 교단장 초청 성역화 사업 설명회(2006.2.16 한국기독교 100주년 3연수실)

6.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업무협약식(2006.9.5)

7. 사단법인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사업회 인가(2008.10.27)

8. 한국최초 성경전래지기념관 공사 기공 (2014.11.21 서천군청)

9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개관 (2016.9.5)

10.기념관 위탁운영(2017.1.1. 사단법인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성경전래의 역사적 만남의 주요 인물들


▪첨사 조대복


첨사 조대복은 1755년 영조 31년에 태어났고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마량진에 도착했을 때, 이곳을 관할하는 수군첨절제사였고 외국배의 정박 목적을 알기 위해 비인 현감 이승렬과 함께 배에 올랐으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첨사 조대복이 받은 책이 성경책으로 알려져 있다.


▪비인 현감 이승렬


이승렬은 1767년 영조 43년에 태어났고 1811년 문과정시에 급제했다. 그 이듬해 그는 홍경래의 난 진압에도 참여했다. 그는 현감의 신분으로 마량진에 도착한 맥스웰 대령과 바실 홀 중령 일행을 맞이했다.


▪머리 멕스웰 함장(대령/Captain Murray Maxwell)


멕스웰은 1775년 스코트랜드의 군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해군장교였던 그는 1816년 중국으로 소함대를 이끌고 갔던 암허스트 경에게 차출돼 영국 군함 알세스트호의 함장이 되었다. 그는 리라호의 함장 바실홀과 함께 조선의 서해안을 탐사했고 서해안 마량진에서 알세스트호를 방문한 첨사 조대복 일행에게 조선 최초의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선물했다.


▪바실홀 함장(중령/Captain Basil Hall)


바실홀은 1788년 이딘버러에서 태어났고 1802년 14살의 나이에 해군에 입대했다. 1814년 부함장으로 승진했고 1817년 대령 함장이 되었다. 그는 영국 정부의 암허스트 경이 이끄는 중국 사절단의 호위임무를 맡았고 이때 중국과 우리나라 서해안, 일본 유구섬(지금의 오키나와) 등을 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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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오늘을 있게 하며 또 내일을 열어주는 관문과도 같다. 최초 한국이 성경을 전래받은 사건은 한국교회사에 큰 사건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비록 당시엔 조선정부의 천주교 탄압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수없이 목숨을 잃고 박해를 받았으나 그 흘린 피들은 거름이 되어 지금도 싹을 피어나게 하고 있다.


천주교에 이어 들어간 개신교는 2025년 선교 140주년을 맞이한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1885년, 한국에 도착하기 전 1816년에 킹 제임스성경이 서해안 마량진(지금의 서천)에서 선물로 한국에 주어졌다. 이 사건은 이미 하나님께서 한국을 선교의 땅으로 삼으려 계획했음을 알려준다. 1000만명의 기독교인이 있는 한국은 수많은 나라에 성경을 보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은 최초의 성경전래와 함께 한국 땅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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