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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만큼 훌륭했던 허스토리들 살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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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중앙일보| 작성일2021-03-01 | 조회조회수 : 1,17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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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개막한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전시장의 윤석남 작가. 윤두서 초상화를 보고 채색화 매력에 빠진 그는 요즘 독립 여성운동가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사진 학고재]


    그 많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윤석남, 여성독립운동가 초상화 전

    혈서 위해 손가락 자른 남자현

    3·1운동 지원한 간호사 박자혜…

    100인 채울 때까지 그리는 게 꿈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윤석남(81)의 전시,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가 던지는 질문이다. 전시장엔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화가 걸렸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펼치고 간 여성은 몇이던가. 독립운동 당시 유관순 아닌 여성들의 목소리와 모습은 왜 이토록 지워졌는가. 금방이라도 화면을 뚫고 나올 것 같은 강건하고 결연한 표정의 독립 여성운동가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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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자혜(1895~1943) 초상. [사진 학고재]
     


    “그거 아세요? 우리나라 전통화 중 여성 초상화는 거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자신을 그린 사람도 없었지만, 여성을 그려준 사람들도 없어요. 저는 그게 좀 억울하더라고요. 초상화는 그냥 초상화가 아니에요. 그 사람이 살아온 여정을 표현하는 거죠.” 2018년 9월 전시 때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윤석남은 이렇게 말했다. 나이 일흔 넘어 시작한 인물 채색화 작품을 모아 처음 선보인 그 자리에서 그는 “앞으로 초상화를 계속 그릴 수 있다면, 다른 여성들을 맘껏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이듬해 주위 여성 벗들의 초상화를 OCI미술관에서 보여줬고, 이번엔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화와 대형 설치작업 ‘붉은 방’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4월 3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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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정화(1900~1991) 초상. [사진 학고재]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것은 박자혜(1895~1943) 초상이다. 간호사였던 그는 3·1운동 당시 부상자를 치료했고 다른 간호사들과 간우회를 조직해 만세시위와 동맹파업을 시도했다. 민족운동가이며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1880~1936)의 아내로 단재가 여순감옥에 갇힌 뒤 옥사할 때까지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며 옥바라지했다. 화면 속 박자혜는 슬픔과 울분이 뒤섞인 표정으로 단재의 유골함을 들고 서 있다.

     

    파란 중국 옷차림의 정정화(1900~1991) 초상도 눈에 띈다. 1920년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망명한 시아버지와 남편을 찾으러 상해를 찾았다가 임시정부의 자금조달 밀사로 국경을 여러 차례 넘나든 인물이다. 독립 의지를 전하는 혈서를 쓰기 위해 손가락을 자른 남자현(1872~1933)은 영화 ‘암살’(2015)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의 모델이 된 인물. 이 밖에도 1931년 노동조합 주동자로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인 강주룡(1901~1932), 중국군 비행대에 복무한 비행사로 항일투쟁한 권기옥(1901~1988) 등을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  윤석남 작가에게 물었다.

     

    Q 실존 인물을 어떻게 그림으로 복원했나.

    A “지난 일 년여간 김이경 소설가(『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의 저자)와 함께 책과 기록을 읽고 공부했다. 이번 전시에 공개한 초상화는 남겨진 사진을 기초로 했다. 사진 한장이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Q 여성 독립운동가를 한 명씩 호명하고 위로한 것 같다.

    A “걱정이 컸다. 어찌 됐든 내 창작이 보태질 수밖에 없다. 그림을 그리며 계속 그림 속 인물들과 대화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 그릴 수도 있어요’라고 빌고 또 빌었다. 얼굴 사진 하나를 들고 걱정 반, 배짱 반으로 그렸다.”

     

    Q 14인 여성은 한결같이 강인해 보인다. 총을 든 박차정(1910~1944) 초상도 눈에 띄고.


    A “현실에서 이들은 내가 그린 것보다 훨씬 더 강하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삶 자체가 그런 강인함 없이 버틸 수 없는 거다. 그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이토록 여럿 있었다는 사실에 저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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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추모하는 설치 작품 ‘붉은 방’(2021). [사진 학고재]
     


    Q 왜 초상화인가.


    A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윤두서 자화상을 본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형형한 그의 눈빛이 나를 노려보며 ‘너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말하는 거 같았다. 집에 가서 잠을 못 이뤘고 여러 차례 찾아가 그림을 봤다. 마흔부터 그림을 그려왔는데, 채색 초상화를 그리고 싶어 아크릴과 유화를 다 접었다.”

     

    Q 초상화 그릴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A “눈이다. 눈은 모두 숨죽인 채 덜덜덜 떨면서 그렸다. 눈을 통해 결단력, 대담함 등 그 사람의 기운이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엔 손이다. 나보고 왜 손을 크고 투박하게 그렸냐고 많이 묻는데 손 역시 그 사람의 삶과 기운을 잘 보여준다.”

     

    Q 여성 독립운동가 그리기에 집중한 이유는.


    A “유관순만큼 훌륭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역사가 충분히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잊히고 묻힌 허스토리(Herstory)를 최대한 살려내고 싶었다.”

     

    100인까지 그릴 계획이라고.

    “지금도 그리고 있다. 전시장에 다 걸지 못한 8인의 초상화는 지금 온라인에서 전시하고 있고, 최근 다른 3점도 완성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100인까지 그리고 싶다.”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난 윤 작가는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주부로 살다 40세 나이에 붓을 잡았다. 프랫 인스티튜트 그래픽 센터(뉴욕)와 아트 스튜던트 리그(뉴욕)에서 수학했다. 1996년 베니스비엔날레와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다. 오는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리는 4인 그룹전, 9월 일민미술관 3인전에 참여한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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