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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룰라에서 탄핵까지(The Edge of Democrac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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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스M| 작성일2020-12-28 | 조회조회수 : 2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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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정국과 민주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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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기의 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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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조국 전 장관 수사로 부터 얼마전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징계위원회의 2개월 정직 결정까지, 검찰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큰 시사점을 주는 자료가 있는데, 브라질의 룰라대통령의 구속을 다룬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룰라에서 탄핵까지 (The Edge of Democracy , 2019)'이다. 지난 2020년 아카데미를 휩쓴 영화 ‘기생충’과 더불어, 세월호 사건을 다룬 '부재의 기억'이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라 주목을 받았는데, 이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 역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는 아니지만, 브라질은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한국과 매우 유사한 점들이 많고, 정치인 룰라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은 검찰개혁이 왜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1. 룰라의 추억 (?)


'룰라'라는 이름은 한국의 90년대를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시대를 풍미한 혼성댄스그룹으로 기억되겠지만,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Luiz Inácio Lula da Silva), 쉽게는 ‘룰라’라고 불리는 브라질 전 대통령을 떠올릴 것이다. 개인적으로 룰라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는데, 국사선생님이 수업 중간에 룰라에 관련된 영상물을 잠시 틀어준 적이 있었다. 그 영상물에서는, 엄청난 숫자의 노동자들이 운집해 그를 지지하는 집회를 하고 있었고, 작은 키에 수염이 난 진지한 눈빛의 한 남자가 그에 호응하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군중들의 모습이었는데, 나이든 브라질의 노동자들이 대략 "우리는 너무도 오래도록 기다려 왔다, 우리는 룰라를 원한다, 바로 지금!" 이런 구호를 목놓아 외치고 있었고, 일부는 감정에 북받쳐 말도 못한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룰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당시, 브라질은 물론이고 정치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었지만, 이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간절함과 진실함 만은, 마음속에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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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룰라


룰라에 대해 더 알게 된 것은 그가 2003년에 대통령이 되고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면서였다. 2013년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세상을 바꾼 리더십, 브라질 경제를 춤추게 한 룰라 다 실바’는 룰라 재임기의 업적을 잘 정리해 주고 있다. 홀어머니 밑에서 형제들과 함께 가난하게 자라난 룰라는 초등학교 때 학업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철강공장에서 밤새 일하다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기도 했다. 공장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는 임신중에 간염에 걸려 아기와 함께 사망하기도 했으며, 종종 일거리를 얻지 못해 헤매다 길바닥에 주저 앉아 울었다고 한다. 그는 1966년 금속공장에 취업해 노동운동가로 나섰고,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어 1986년 연방하원에 당선된다. 이후 1989년 처음 노동자당 후보로 대통령에 출마했는데, 그 진보적인 성향으로 94년 98년까지 세 차례나 고배를 마신다. 이후 2002년 10월 네번째 출마한 대선에서는 중도적인 공약을 내세우고, 양복을 입고 수염을 다듬는 등 스타일도 바꾸며, 중도, 중도우파까지 포섭해, 최초의 비엘리트, 노동자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이런 룰라의 일대기를 살펴 본다면 많은 한국인들은, 수많은 정치적 탄압과 모함 속에서 삼수 끝에, IMF 위기 속에 대통령에 오른 인동초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룰라가 대통령에 되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유명한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룰라가 당선되면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처럼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할 것이라 경고했고, 좌파 대통령이 국유화와 외국자본혐오 정책을 추진할 거란 예상으로 600억 달러 규모 국제자본이 빠져나가기도 했다. 브라질은 국내총생산 60%에 달하는 공공부채, 2천억달러 외채, 34% 빈곤층 (국민 1/4), 10명중 2명이 실업자인 고질적인 경제문제에 시달리고 있었고, 북동부는 사망률 최고, 문맹률 최고라는 지역 격차도 심각했다. 룰라는 급진좌파라는 '우파'의 비판과, 신자유주의와 타협했다며 '좌파'도 그를 비판하는 와중에, 룰라는 진보적인 의제를 담은 실용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한다.


먼저 기아퇴치 목적으로 빈민가구에 식량을 무상 공급하는 ‘포미 제로 (Fome Zero)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나 준비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듬해에는 유명한 ‘볼사 파밀리아 정책(Bolsa Família)’을 시작한다. 빈곤층 생계비를 지원하고 문맹률과 어린이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정책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학교 출석율 85% 이상, 자녀 예방접종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어 효과를 발휘했고, 브라질의 고질적인 빈곤을 감소시키고, 교육기회를 확대한다. 복지예산이 전년대비 40% 증가해 보수언론과 야당이 포퓰리즘이라 맹공했지만, 무려 천2백만명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룰라는 부족한 재원 확보를 위해 공무원 연금개혁에 나섰는데, 당시 공무원, 판검사, 군인들의 연금은 빈곤층 최저임금의 몇십배가 될정도로 높았다. 그가 수령나이 연장, 연금 대폭 삭감을 추진하자, 룰라의 노동자 당 소속, 공무원 노조의 격렬한 반대와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개혁을 강력히 밀어부쳐, 2003년 8월 6일 공무원 연금제도 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했고, 확보한 재정을 도시 빈민과 빈농들에 투자해 중산층이 점차 확대되었다. 집권 2년째인 2004년 부터 브라질 경제 살아나기 시작했는데, 내부적으로는 룰라의 정책으로 중산층이 증가해, 소비 촉진, 국내 수요 증가, 고용 창출의 선 순환이 시작되었고, 외부적으로는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브라질의 농산물, 광산물 수출이 대폭 증가한 환경이 맞아 떨어졌다.


이러한 업적으로 2006년 61%의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하게 되었고, 이후 브라질 판 뉴딜 정책인 경제성장촉진계획(PAC)을 수립해, 기초산업 강화,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고, 3년간 2천억 달러 투입해, 대체에너지 산업 투자, 내륙지방 발전 등을 추진한다. 이후 2008년 브라질 역사상 처음 외환 보유액이 외채를 넘어서고, 경제성장률 7.5%를 달성해, 룰라 취임시 국가 부도 위기였던 브라질은 이제 세계 8위 경제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향후 세계 경제에서 주목해야 할 국가를 지칭하는 ‘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라는 표현도 이때 나타나게 되고, 남미는 신자유주의정책의 실패 이후 브라질의 성공에 기반해 진보의 물결이 출렁대기 시작한다. 높아진 국가적 위상 속에, 브라질은 이후, 2014년 월드컵을 유치하고, 2016년 남미 대륙 최초로 올림픽을 유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룰라는 퇴임직전 87%라는 놀라운 지지율 속에 2010년 말 두번째 임기를 마쳤으며, 민주화 운동가 출신이자 룰라 정부에서 장관으로 일했던 후계자 지우마 호세프(Dilma Vana Rousseff)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2010년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는 “룰라 다 실바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 공공연하게 존경을 표시하기도 했고, 룰라의 인기는 브라질과 남미를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아,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까지 거론되었다.


2. 제국의 역습: 룰라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노동운동가 출신이 대통령이 되어 두번의 임기를 통해 빈부격차를 줄이고, 경제성장에도 성공하며,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하고 퇴임한 룰라의 성공은 가히 기적적이다. 이를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한 이유는, 사법권력, 검찰권력이 악마의 칼을 휘두를 때, 룰라처럼 성공한 대통령까지 처참하게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룰라에 이어 2010년 대통령이 된 후계자 호세프는 2014년 재선 이후 2016년 탄핵을 당했고, 룰라는 2018년 구속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이런 질문에 궁금해 하던 나는 넷플릭스에서 관련 다큐멘터리가 나오자 바로 찾아봤었다. 호기심에서 보기 시작한 다큐는, 곧, 숨을 가다듬으며 몇 번에 나눠 볼 정도로, 고통과 공포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IMF를 극복하고 햇볕정책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한 김대중 정부와, 그 정책을 이어가며 지역주의, 권위주의와 맞서싸운 노무현 정부의 경험, 그리고 이후 이명박 정부가 등장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잔혹한 사법살인을 진행한 과정,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시대의 어두운 기억들을, 계속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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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체포된 당시의 룰라(우)와 호세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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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재창출에 성공해 대통령 직을 넘겨주는 룰라와 그의 후계자 호세프


호세프의 2014년 재선 이후 원자재 가격 폭락해 경제가 어려워 지고, 월드컵과 올림픽 개최가 비용문제와 정책적 우선순위 문제로 삐걱거리는 가운데, 연방판사 세르지우 모루 (Sérgio Moro)에 의해 ‘세차작전 (Operation Car Wash, Operação Lava Jato)’이라는 이름으로 국영석유기업 '프트로브라스'의 비자금 수사가 시작된다. 브라질 최대 공기업의 비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가는 구조적 관행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이 수사는, 룰라와 호세프의 노동자당의 4회에 걸친 정권 창출에 불만을 가진 보수정당, 언론, 기득권층, 종교계에 의해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관행적으로 퍼진 비자금 문제에 노동당 정치인들까지 연루된 것은 사실이었으나,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호세프를 탄핵하고 룰라를 구속하는 명분으로 사용된 것이다. 호세프를 페트로브라스와 엮으려는 시도가 실패하자, 보수언론과 기득권 세력은 정책 실패 만으로도 탄핵 사유가 된다며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룰라에 대한 혐의로 검찰이 제시한 것은 고작, 건설회사 오데브레시로 부터 3단복층 아파트 한 채를 받았다는 것인데, 이 마저도 룰라 소유라는 주장을 증명하지 못했고, 그래서 룰라가 그 증거를 감추었다는 주장만 반복한다. 결국 확실한 증거가 아닌 모욕주기로 일관한다. 언론은 이를 세르지오 모루와 룰라의 세기의 대결이라는 식의 이야기거리, 일종의 '카니발'로 만들어 내고, 모루는 두달만에 룰라에게 9년 6개월 형을 선고하고, 상고법원으로 가서는 이것이 12년으로 증가한다. 이 와중에 룰라 아내 마리자는 뇌졸증으로 사망한다. 또한 룰라의 친형 프레이 시쿠가 역시 오데브레시로 부터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고 특혜를 주었다고 기소되었는데, 역시 룰라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고, 2019년에 증거부족으로 룰라 형제에 대한 기소가 기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득권이 지배하는 언론은 집중적으로 노동자당 관련 혐의만을 보도하며, 노동자 당과 두 지도자를 악마화 하고, 모루 판사는 표적 수사를 하며 정보를 흘리고, 브라질의 복음주의 기독교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 이미지는 고착화 되고, 룰라와 호세프에게 돌을 던지고 조롱하는 것이 브라질의 현실에 좌절한 상당수 국민들의 스트레스 해소거리가 되어 버린다.


역시 한국인들은, 검언유착 속에 피의사실 흘리기, 모욕주기 식의 노무현 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런 말들도 기억난다. 또한 조국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도 유사한 과정이 진행되었다. 진짜 기득권을 누리며 부패해 온 이들이, 오히려 개혁세력에게 일종의 ‘위선자론’을 들이대며, 혐의와 의혹만으로 개혁시도를 짓밟아 무력화 시키려 시도했던 것, 그리고 일부 진보언론과 진보세력들은 검찰과 언론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보다, 마치 조국 장관이 모든 부패와 기득권의 상징인 양 성토하던 것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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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와 호세프를 조롱하며 감옥에 보내라는 반 룰라 시위대의 모습
 


브라질의 특이한 정치상황도 이에 한 몫 했는데, ‘주별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라는 극단적인 선거제도로 주마다 군소정당이 난립하는 가운데, 룰라의 노동자당은 14년간 여당이었어도 하원 의석이 10% 정도밖에 안되는 상황으로, 보수정당인 민주운동당과 연정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정당의 테메르에게 부통령 자리를 줘야 집권 가능할 정도로 취약한 정부였던 것이다. 이후 권력을 잡을 기회가 오자, 민주운동당 소속인 부통령 테메르와 하원의장 쿠냐가 주저없이 돌아서서 호세프 탄핵에 나서는데, 격렬한 대립끝에 탄핵이 가결되고 테메르가 대통령이 된다. 노무현의 탄핵이 어른거리는 대목이다.


충격적인 것은 탄핵을 주도한 쿠냐는 석유기업에서 받은 거액의 비자금을 대형 교회를 통해 세탁한 뒤 스위스 은행에 은닉했는데, 호세프가 자신을 수사로부터 보호해주지 않자 앙심을 품고 탄핵을 진행했던 것이고, 테메르 역시 나중에 폭로된 석유회사 임원간의 대화에서, 자신에 대한 수사를 멈추려면 호세프를 몰아내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이 공개되었다. 결국 똥뭍은 개가 겨뭍은 개 나무란 격이어서, 이후 국민 80%가 대통령이 된 테메르에 대해 수사를 요구했으나, 호세프를 탄핵한 국회의원들은 이번에는 정반대로 수사를 가로막았다. 재임시 테메르는 석유매장량을 외국 석유회사에 넘기고, 노예노동 금지 법안 약화, 가난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일 긴축조치를 시행하는 등, 룰라의 개혁을 무효화 한다.


명확한 혐의 없이 호세프가 탄핵되자, 룰라는 다시 대선 출마를 결심한다. 대선 6개월전 룰라는 31% 지지로 1위 였고, 기득권을 대표하는 후보로 2위인 보우소나루(Jair Messias Bolsonaro)는 고작 15%였다. 그러나 연방최고 법원은 6대5로 룰라의 상고를 기각하고, 모루 판사는 룰라의 재수감을 요구해서, 브라질 법에 의해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어쩔 수 없이 룰라의 러닝메이트였던 페르난두 아다지가 대신 출마 했으나, 룰라 만큼의 인지도가 없었고, 2018년 말 결국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군인 출신인 그는 과거 잔혹했던 군부독재를 찬양하는 등, 반민주주의적 반인권적인 발언으로 유명해서 미국의 트럼프나 필리핀의 두데르테와 비교되기도 한다.


결국 선거를 결정지은 것은 국민이 아니라 사법부와 검찰권력이었다. 이후 룰라를 구속한 주역인 세르지우 모로 판사는 보우소나루 정부의 법무장관이 되었다. 정권을 무너뜨리고 수구세력이 회귀하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한데 대한 보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다. 이후 브라질의 온라인 저널 ‘디 인터셉트(The Intercept)’는 모루 판사가 룰라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과 긴밀하게 내통했다는 것을 수많은 자료를 통해 폭로하는데, 부족한 증거에도 검찰은 무리한 기소를 하고, 사법부는 유죄판결로 응답해, 재판 과정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짜고치는 고스톱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나레이션에서 이를 ‘3B’가 승리했다고 표현했는데, 그것은 “The Bible, the Bullets and the Bull” 즉, ‘복음주의 기독교, 군부독재 세력, 자본가의 기득권’이 브라질을 다시 장악했다는 설명이다. 노동자 당에 부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브라질 정치의 특성상 부패가 만연한 상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오히려 이와 비교할 수 없게 대놓고 부패한 보수 정당들과 기득권 세력들이, 언론과 검찰, 종교계와 연합해, 룰라와 호세프를 마녀사냥 했던 것이 국민들 상당수에게 결국 먹히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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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우소나로(좌)와 그의 법무장관이 된 모로 전 판사 (우)


3. 역사의 후퇴와 스트롱맨의 시대


브라질 역사는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다. 포르투갈 식민시기 부터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이 노예제를 운영하며 수백년간의 지배 해왔고, 1888년 노예제가 폐지되었으나, 빈민들은 수입이나 생산수단이 없이 방치 된 상태에서 슬럼가(파벨라)를 형성했다. 룰라가 대통령이 된 2003년에는 상위 10% 소득이 전체 절반을 차지해 지니계수 0.581로 세계에서 불평등이 심한 나라 중 하나였다. 1964년 군사쿠데타 이후 1985년까지 21년간 군부독재가 지속되었다. 소련과 대립한 냉전기, 미국은 공산화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거의 파시스트에 가까웠던 중남미의 군부 독재정권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는데, 남미에서는 미국의 지지하에 진행된 ‘콘도르 작전’을 통해 6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납치, 고문을 당했으며,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경제개혁의 싹이 짓밟혔다. 군사정부의 후예들은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악행을 정당화 하며, 지주, 기업가들과 함께 강력한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9개 가문이 브라질 전체 언론을 경영할 정도로, 과두제적 적폐가 고착된 가운데, 정부만 민주화가 되었던 것이다. 잘 알려진 브라질 영화 '시티오브 갓 (2002)'이나 '엘리트 스쿼드 1,2 (2007, 2010)'등을 보면 브라질 사회의 빈부격차, 범죄,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 고통스럽게 확인 할 수 있다.


다큐의 감독인 페트라 코스타는 자신의 특이한 가족 배경을 소개하는데, 할아버지가 부유한 기업가로 독재정권 시절 부를 축적한 기득권 층이었던 반면, 부모님들은 반 군부 독재 민주화 운동가로, 룰라와 호세프와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이들에 대해 상당한 감정이입을 하며, 가까이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수 있었고, 브라질 민주주의의 쇠퇴를 우려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명확한 과거 청산 없이 민주주의가 도래했지만, 대를 이어 부와 권력을 축적하고, 언론, 사법부, 검찰, 종교계, 군대, 기업 등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층이 역사적 망각 속에 있는 대중을 호도하고, 역사를 뒤 엎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의 쿠테타는 군대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언론'의 힘을 동반한 '사법 쿠테타'를 통해 권력을 빼앗는 것이다.


룰라는 호세프의 탄핵과 자신의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브라질의 취약한 정치적 구조 속에서 연정을 잃을까 봐 선거제 개혁을 주저했고, 언론에 대한 규제를 하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고 말했다. 여기에서는 퇴임 후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현재 브라질의 대통령인 보우소나로는 군부독재의 과거를 상징한다. 그 자신이 군인 출신이었으며, “고문의 효과는 즉각적이다, 난 독재정권이 그립다, 독재 때 반정부 인사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실수다”라는 발언들로 공공연히 과거 군사정부의 인권탄압과 만행들을 합리화 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가 합쳐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막말과 혐오발언, 초법적 수단도 주저하지 않는 과격한 태도로 미국의 트럼프나 필리핀의 두데르테와 비교된다. “여성과 흑인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흑인이 조종하는 헬기는 위험하다..당신은 예쁘지 않으니 강간 당하지 않을 것.. 나는 게이 아들을 사랑할 수 없다. 그런 아들은 사고로 죽는 게 낫다, 게이는 주먹으로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원주민들은 우리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영토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등등 나열하기 힘들 정도의 황당한 막말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의 불안정한 치안이나 취약한 민주주의 속에서 지지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의 정부하에 아마존 삼림의 파괴가 방치되고, 최근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도, 나가서 일을 하라는 식의 무개념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트럼프나 보우소나로 같은 지도자들은 반이민, 인종주의 포퓰리즘과, 전세계적인 권위주의화, 스트롱맨들의 등장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들은 계속해서 막말과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 진보 개혁세력이 이들이 주도하는 논쟁에 끝없이 말려들게 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분산시키며, 기득권 세력에 대한 본질적 개혁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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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 시절의 보우소나로
 


4. 검찰은 왜 존재하는가?


브라질의 상황을 고통스럽게 상기하면서, 오늘 검찰개혁, 언론개혁을 요구받는 한국의 상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검찰은 검찰개혁을 주장해온 조국 법무장관과 그 가족에 대해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논란을 벌였으나 현재까지 뚜렷하게 입증된 혐의는 없다. 윤석열 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는 검언유착을 통해 여권인사를 겨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윤 총장은 이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징계를 받았다. 김봉현의 폭로에 따르면 라임사건으로 청와대를 조준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윤총장이 추미애 장관의 직무정지에 행정소송으로 반발해 돌아온 이후에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측근이 검찰조사를 받다가 자살하는 일이 벌어져 정치적인 의도에 의한 무리한 수사가 아니었나 논란이 일었고, 김봉현 회장의 검사 술접대에 대해 술자리에 있던 시간을 따지는 이상한 계산법으로 현직 검사 3명 중 2명을 불기소 한 것을 두고 봐주기 수사 논란이 일었다. 이를 두고, '검사를 위한 99만원 불기소 세트'라는 말로 국민들의 조롱까지 받고 있다. 


검찰은 국민들을 지키고 약자를 보호하며, 범죄자들과 힘을 남용하는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검찰개혁을 가로막기 위해서, 그리고 피로 이뤄놓은 민주주의를 되돌리기 위해서, 국민으로 부터 자신에게 부여된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는 질문을 받고 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검찰개혁, 언론개혁이 되지 않을 경우, 노무현 대통령과 같이, 또 다시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한 지도자가 모욕당하고, 살육당하며, 정의와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이다.


5. 사법쿠테타, 그 이후


검찰개혁과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은, 국민들에게는 생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브라질 현 대통령 보우소나로는, 미국의 트럼프와 유사하게, 과학적 팩트들을 무시하고 코로나 사태에도 방역조치에 둔감하며, 국민들에게 나와서 일하라고 이야기 하는 등, 황당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브라질은 2020년 5월말 미국에 이어 전세계 감염자수 2위를 찍었다. 백칠십만명에 이르는 미국에는 못미치지만, 감염자가 36만명에 달해 러시아 스페인 영국 이태리를 모두 앞섰다. 2020년 12월 현재 미국, 인도에 이어 확진자 수 6백9십만명으로 세계 3위, 사망자 18만명이라는 처참한 상황을 맞고 있다. 룰라가 대통령이었다면 적어도 이런 한심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합리한 탄핵과 사법쿠테타가 벌어져 정치가 후퇴한 브라질이, 코로나 상황에서 대 재앙을 맞는 것을 보면, 바른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나쁜 정치는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대한민국에도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집권하고 있었다면, 어떤 대재앙이 왔을지, 상상하기도 두려워 진다.


룰라는 2018년 수감되었다가, 2019년 11월에 석방이 되었다. 2심판결에서 유죄를 받았기에 최종판결의 유죄가 아니더라도 수감이 가능하다는 판결을 연방대법원이 뒤집었기 때문이다. 룰라는 다시 좌파의 구심점이 되었고, 보우소나로에 대한 탄핵을 주장하고 있으나, 그에 대한 수사는 진행중이고, 2020년 10월에 브라질 연방검찰 권력형 부패수사팀은 또 다시 부패혐으로 룰라를 기소하기도 했다. 사법쿠테타의 주역인 세르지오 모루는 보우소나로에 의해 법무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보우소나로와의 관계가 틀어져 2020년 4월 사임했다.


마침 지난 학기 가르친 수업에 브라질 출신 학생이 있어서 룰라와 보우소나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대화를 나눠봤다. 그랬더니 "보우소나로는 대통령으로 무능하지만, 룰라는 부패에 유능했다"고 말하며, 매우 가벼운 양비론적인 태도를 보였다. 내가 확인한 바로, 룰라의 부패 혐의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위에서 말한 건설회사에서 아파트를 받았다는 의혹 마져도 증명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언론과 브라질 사법부가 덧칠한 이미지, 즉, 겉으로 좋은 대통령인 척 했지만 알고보니 부패한 위선자였다는, 끈질긴 흑색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인 듯 했다.


룰라가 노동운동가, 민주화운동가, 대통령으로서 보여준 모든 노력과 업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이렇게 쉽게 폄하하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 일부 국민들의 태도가 떠올라, 안타깝기도 했다. 현실에서 자신이 경험하는 이익과 불이익에는 극도로 민감하지만, 역사와 정치는 잘 모르고, 공공의 정의에 대한 의식이 없는 국민들은, 언론과 검찰이 조작하기 가장 좋은 대상이 아닐까?


브라질에서 세르지오 모루와 여론의 합작으로 진행한 수사가 진행되고, 이른바 '위선자'론으로 룰라에게 이중적이고 부패한 이미지를 덧씌우고, 세르지오 모루와 룰라의 세기의 대결이라는 식으로 구도를 몰아갔던 패턴은, 한국의 검찰수사와 언론보도 행태와 정말로 유사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조국 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언론의 보도 행태, 검찰개혁을 기를 쓰고 '추-윤 갈등'으로 몰아가는 최근의 언론 보도 등과 쌍둥이 처럼 닮았다. 언론과 검찰의 문제는, 일단 검찰이 모욕주기식으로 수사와 기소를 하고, 피의사실 흘려주면, 언론이 마구 기사를 써대고, 혐의 입증 여부와 상관없이 목표대상에 낙인을 찍고, 대중은 여론재판을 해버린다는 것....검찰개혁, 언론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들이 지목한 사람은 누구나 짓밟을 수 있는 야만적 권력이 통제받지 않는 것이다.


윤석열 총장은, 법무부 징계위의 중징계 결정과 그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 이후에도, "오늘 법원에 정직 집행정지 신청”하겠다며, 일종의 항명이나 '결사항전'의 태세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혹시라도 브라질의 경험을 참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먼저는 세르지오 모루 처럼, 반부패의 영웅이 되어, 검찰의 칼이 조국, 추미애, 그리고 청와대까지 향하고, 보우소나로처럼 대선주자로 화려하게 부상하는 것일까? 국민에게는 그것이 끔찍한 악몽일까 아니면 밝은 미래일까? 


이인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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