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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고달플지언정 웃음은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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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3-11-03 | 조회조회수 : 3,3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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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더운 나라로 간다지만 비행기에서 입을 두툼한 옷 한 벌은 가지고 타야 한다는 생각에 재킷을 걸치고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좌석에 놓인 담요를 보면서 에어컨 바람을 피할 생각을 했는데, 웬일인지 캄보디아까지 가는 내내 비행기의 실내 온도는 내려가질 않았습니다. 비행기 안은 후텁지근한 캄보디아 날씨의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캄보디아 공항에 내리니 후끈한 바람이 몰려왔습니다. 현지인들에게는 긴소매 옷을 꺼내입게 만드는 날씨라는데 건조한 LA 날씨에 익숙한 저는 무더운 날씨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자정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공항에 마중 나온 김인성 선교사님과 반갑게 만나 숙소인 캄퐁치낭까지 자동차로 이동했습니다. 10년 전에 왔을 때는 3~4시간 걸리던 거리였는데, 최근에 도로가 나면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교센터에 도착하니 모기향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둘러봐도 모기향 피운 흔적이 없었습니다. 불교국가이니 동네 사찰에서 향 피우는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냄새는 동네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였습니다. 플라스틱이나 고무까지 태우는 냄새가 온 마을을 뒤덮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와 쓰레기 태우는 냄새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김 선교사님이 세우고 운영하시는 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2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찬양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는 아이들이 소리를 높여 찬양을 불렀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실마다 캄보디아의 미래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완공하여 문을 연 중학교 교실에서는 명문 사립의 전통을 만들겠다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의지가 느껴질 만큼 진지하게 수업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캄보디아의 미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 캄보디아와 세계를  이끌 미래의 인재들이 되기를 축복했습니다. 아이들의 빛나는 눈동자가 그들이 마주할 밝은 앞날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낯선 이를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간식으로 준비한 과자를 받을 때 두 손을 꼭 모으고 ‘어~쿤(감사합니다.)’이라고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제 마음에도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래도 몇 시간 얼굴을 익혔다고 쉬는 시간에 달려 나온 아이들이 제 어깨에 올라타고, 두 팔과 무릎에 올랐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작은 몸짓 하나에도 웃음꽃이 피었고, 마주 잡은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주어 붙잡고 있는 고사리손에 이끌리어 이리저리 다녔습니다. 순수한 동심에 한껏 젖어 있는데, 선교사님이 아이들의 형편을 귀띔해 주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아버지가 외국으로 돈 벌러 가서 연락이 끊겼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 버림받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매를 맞고 산다고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쓰레기장에 살면서 장학금을 받아 겨우 학교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다 어려운 형편 가운데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동네가 너무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업료를 제대로 낼 수 있는 학생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땅이라도 조금 있어서 농사라도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은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아이가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쓰레기장에 살면서 하루에 2~3달러를 벌기 위해 악취와 파리와 싸우면서 폐지를 고르는 일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연 없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잠잘 곳이 없어 학교에서 잠을 자면서 생활하는 학생도 몇 명 있었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데 한마디로 기구했습니다. 유치원생에서부터 기껏해야 열 몇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인데 인생의 모진 풍랑이 얼마나 거센지, 듣는 제 마음이 다 아릴 정도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그중에서도 제일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났기에 삶의 무거운 짐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짊어져야 할 짐을 대신 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들의 짐을 나누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짓기 위해 후원하신 분들도 그들의 짐을 나누어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며칠만 있어도 더위에 진이 빠지는 곳에서 14년을 버티며 사역하시는 김인성 선교사님도 아이들의 짐을 대신 지고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더 좋은 보수를 뒤로하고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학교 일과 교회 사역에 통역까지 도맡아 하는 현지인 사역자도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짐을 나누어지는 이들이었습니다. 도서실과 축구장을 지어준 연합감리교 세계 선교부도 아이들의 짐을 나누어졌고, 아이들의 수업료를 후원하는 분들도 짐을 나누어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연 많은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였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하는데, 아이들이 제 마음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누구보다 힘들 텐데, 그들의 웃는 얼굴에서는 고달픔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번 캄보디아 선교지 방문을 통해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삶이 고달플지언정 웃음은 잃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었습니다. 캄보디아의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선교지 방문을 후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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