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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로마의 영광과 폼페이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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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3-09-11 | 조회조회수 : 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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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의 도움으로 11일에 걸쳐 이탈리아를 돌아보는 귀한 여행 기간을 가졌습니다. 르네상스의 심장 피렌체를 떠나 성 프란치스코의 아시시를 들러 로마에 이르렀습니다. 과연 로마였습니다. 과거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는 장엄한 유적과 건축물로 지난 영광을 입증하고 있었습니다.

       

    사흘 밤을 지내며 보았던 로마는 분명히 한 문명의 최정상을 보여줍니다. 압권은 베드로 대성당과 예술적 걸작들입니다. 중세 기독교의 위용과 부요함은 찬란합니다. 땅의 영광도 이 정도이니 하늘의 영광은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교회의 고급문화가 가진 모습을 미국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저는 “이것이 천국에도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영광은 개선문과 콜로세움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전쟁에 승리한 장군이나 황제가 입성하던 언덕은 아직도 분명한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높이 솟아있는 황제의 궁궐과 귀족들이 머물고 활동하던 건물 사이로 난 행로 좌우에는 개선장군을 환영하는 인파의 환호가 연상됩니다. 지중해를 제패하고 열방을 다스리던 제국의 영광은 긴 수로와 높은 벽돌 건물과 대리석의 기둥과 도로의 유적이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숙소 근처에서 매일 볼 수 있었던 콜로세움, 그 유명한 원형경기장은 밤에도 푸른 조명 속에서 고고히 서 있었습니다. 지금의 원형경기장은 지하의 골격이 보이고, 경기장 벽의 예술품이 모두 떨어져 나간 모습이지만, 이전에는 그 돌 위에 판자가 깔리고 그 위에 모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검투사들의 생사를 건 싸움을 보고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그 모래 위에 노예 출신의 검투사들과 수많은 짐승이 피를 흘리면, 이내 바닥의 피를 새로운 모래로 덮고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사자에 의하여 그리스도인 또한 무고한 피도 흘렀다 생각하면, 콜로세움의 장관은 곧 심각함과 슬픔으로 바뀝니다. 베드로는 어디서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고, 스페인 선교를 마친 바울은 어디에서 순교의 생애를 마쳤는지 묻게 됩니다.

       

    로마를 떠나 나폴리와 폼페이를 눈앞에 두고, 카푸아(Capua)라는 고대의 도시를 만나게 됩니다. 이곳은 기원전 73년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에 의하여 일어난 반란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100명이 채 못 되는 검투사들은 카푸아의 양성소에서 빠져나와, 스파르타쿠스의 지도하에 12만 명의 대군으로 불어납니다. 71년 멸망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로마군에 대한 전승을 올린 그들은 트라키아로의 탈출에는 실패합니다. 결국 패배하고 남은 노예 6,000명은 로마와 카푸아 사이의 아피아 길가 수십 리에 걸쳐 세워진 십자가에 달려 죽어갑니다. 

       

    제국의 문명이 그러하듯이 로마는 잔인했습니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 속에 감추어져 있던 폼페이라는 도시의 터전은 가정집, 목욕탕, 수영장, 경기장, 검투사의 숙소와 유곽 등으로 화려하고 사치스럽습니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향락적인 당시 최고의 문화는 서기 79년 8월, 18시간 동안 화산재에 싸여 역사의 인큐베이터로 후대에 남겨졌습니다. 나폴리 남쪽 끝의 소렌토의 발랄함과 카프리섬의 아름다움은 폼페이의 그늘과 비극을 망각하도록 돕는 것 같습니다.

       

    계시록 18장이 가르쳐 주는 “큰 성 바벨론의 멸망”으로 비유된 로마 비판은 그 영광 속에 깃든 그늘을 발견하도록 인도합니다. 찬란한 문명의 향연이 주변 나라를 수탈한 물질과 포로들의 살인적 노동으로 세워진 것이라면, 로마제국의 영광은 인간의 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블레즈 파스칼의 통찰처럼, 로마의 역사 속에는 위대함(greatness)과 유죄성(culpability)이라는 양면성(ambiguity)이 존재합니다. 로마의 영광은 폼페이의 그늘과 함께 성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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