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세 권사님의 마지막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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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서 가장 큰 어른이신 이기득 권사님께서 몇 주 전에 넘어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병원으로 심방을 간 저희 내외에게 권사님은 요즘 병원에는 젊은 사람들밖에 없다고 하시길래 제가 맞장구를 치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요, 병원 간호사들이 다 젊은 사람들이네요.” 그 말을 들은 권사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아니 간호사들 말고.”라고 하셨습니다. “아! 요즘은 의사들도 다 젊지요.”라고 말씀드리자, 권사님은 간호사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라고 하면서 병실마다 젊은 사람들이 아파서 다 들어와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병실을 나오면서 옆 병실에 계신 환자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젊은 사람은 하나도 안 보이고 모두가 다 나이가 드실 만큼 드신 분들만 누워계셨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우리 권사님은 왜 젊은 사람들이라고 하셨을까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권사님 연세가 104세이니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젊어 보였던 것입니다. 1919년생인 권사님은 넘어지셔서 병원에 들어오시기 전까지 건강을 잘 유지하시며 혼자서 생활하셨습니다.
그렇게 병원에 계시다가 재활원으로 옮기신 권사님을 다시 찾아뵈었습니다. 방에 들어서자, 권사님이 누워계신 침대 머리에 권사님을 소개하는 게시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About me’라는 제목의 자기소개서에는 한국말을 모르는 간호사들이 권사님을 부를 때는 ‘Hal-Mo-Nee(할머니)’라고 불러 달라고 하셨고, 좋아하는 음식은 ‘Korean Food(한국 음식)’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가장 행복할 때는 ‘Meet Family(가족들을 만날 때)’, 취미는 ‘Cooking & Listen to Music(요리와 음악 감상)’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 말에는 ‘Worship(예배)’이라고 쓰여 있었고,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모습을 묻는 말에는 ‘Good Person(좋은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화려한 분홍색 꽃무늬 셔츠에 재킷까지 걸치신 채 멋지고 단정한 모습으로 저희를 맞아 주셨습니다. 이 권사님은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것이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젊었을 때 새벽마다 하나님이 깨워 주셔서 기도하며 믿음 생활하던 때를 회상하시면서 그때가 신앙 생활하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젊었을 때 서울 옥천동에 살던 이야기부터, 교회와 교우들의 안부도 물으셨고 자녀들의 건강도 염려하셨습니다. 미국에 오셔서 신앙 생활하시면서 교회를 섬기신 이야기를 할 때였습니다. 5년 전에 교회에 강대상을 기증하신 일을 떠올리면서 그때 좋은 강대상을 마련해 주셔서 지금까지 제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권사님께서는 너무도 좋아하셨습니다. “그 강대상이 몇 번째 강대상이라고 하셨죠?” 권사님께서 여러 교회에 강대상을 해 주셨다는 것을 알기에 슬쩍 여쭸더니 ‘열 번째’라는 답이 거침없이 나왔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는 말씀을 읽을 때 권사님은 외우시면서 따라 하셨습니다. 권사님의 팔을 꼭 붙잡고 간절히 드리던 기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이라는 말과 함께 끝났는데, 이번에는 권사님께서 기도를 계속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권사님께서는 또렷한 음성으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께 맡기는 가운데 이렇게 드러누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쉬라고 하신 것 같아서 쉬고. 이제 건강을 되찾아서,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아버지, 말없이 봉사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건강을 되찾아서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말없이 봉사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는 권사님의 기도는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권사님께서는 8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목요일 오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권사님의 마지막 기도를 이루어 드리는 것은 저희의 몫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그토록 사모하셨던 권사님! 평생을 기도하시면서 예배자로 사셨던 권사님! 말없이 봉사하시면서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셨던 권사님! 이제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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