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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슬아슬한 순간을 지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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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3-03-14 | 조회조회수 : 7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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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중에 저녁 약속이 있어 식당에 갔습니다. 길게 늘어선 테이블을 지나 식당 구석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맨 구석 자리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있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창 음식을 먹는데 아이들 몇 명이 옆 테이블 한쪽에서 몸을 수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바닥에 앉아 고개를 내밀고는 식당 입구 쪽을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옆 테이블에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몇 명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식사를 계속하는데, 경찰차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경광등을 비추면서 지나는 것이 창밖으로 보였습니다. 한참 있다가 식당 종업원이 오길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밖에서 싸움이 났는데, 어떤 사람이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뒷문을 통해 밖으로 도망쳤고, 곧이어 경찰이 들이닥치더니 쫓아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혹시 총이나 흉기를 들고 다시 나올지 몰라서 식당 앞쪽에 있던 손님들은 저희 옆 테이블로 대피하여 몸을 낮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큰일 날뻔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허탈함에 종업원에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럼, 말을 해 주셨어야죠. 우리는 그런 것도 모르고 음식만 먹고 있었잖아요.” 


    식당 종업원은 그 사람이 들어오길래 여기 들어오면 안 된다고 자신이 막아섰는데도 막무가내로 들어왔다는 무용담을 한참 동안 늘어놓더니 식당에 들이닥친 사람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놈이 나쁜 놈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는데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상황 판단이 안 되었지만, 돌아보니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주방 뒷문으로 나가지 않고 총이나 흉기를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와 인질극이라도 벌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화요일 오후, 한인타운에서 있었던 장례예배에 참석하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타운의 복잡한 길을 따라가고 있는데, 오른쪽 차선이 막혀 있었습니다. 큰비가 내린 후라 도로마다 보수 공사를 많이 하길래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왼쪽으로 차선을 변경하는데,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는 길을 경찰차 여러 대가 막고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더구나 그 골목으로 들어서는 길뿐 아니라 반대쪽에도 범죄 현장에 치는 노란색 끈이 걸린 것이 보였습니다. 자동차만이 아니라 사람도 드나들지 못하게 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길도 그렇게 막혀 있었습니다. 


    그 골목에는 우리 교회의 교우 한 가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차를 돌려 그 집 앞으로 지나가면서 상황을 살피고 싶었지만, 사방이 막혀 갈 수가 없었습니다. 교우분께 전화를 드렸더니 그냥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시고는 자신과 가족들은 모두 안전하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상황을 들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옆집에서 누군가 총을 쏘았고, 경찰이 와서 교우분의 집과 이웃집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더니 몇 시간 동안 수색을 했다는 것입니다. 역시나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그런 아슬아슬한 순간을 맞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운전대를 잡는 시간부터는 아슬아슬한 순간의 연속입니다. 아이들 키울 때면 일상이 아슬아슬한 순간입니다.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아슬아슬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사업하시는 분들대로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은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대로 생업의 자리에서 아슬아슬한 순간을 지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민자의 삶이야말로 살얼음판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길과 같습니다.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얼음판이 갈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슬아슬한 순간을 지나는 것은 인생만이 아닙니다.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나라도 아슬아슬한 순간을 지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슬아슬하다는 말은 아직은 버티고 있다는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슬아슬 넘어질 것 같다는 말은 아직 넘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아슬아슬 숨이 붙어있다는 말은 아직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아슬아슬합니다.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 세상을 버틸 힘이 있다면 아슬아슬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희망의 끈을 꽉 붙잡고 아슬아슬하지만, 멋진 인생을 살아냅시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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