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하나님은 부당한 살육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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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독하는 사람들에게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창세기의 중간중간에 나오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족보,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나오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법령들과 물건들, 그리고 제사법을 넘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간신히 신명기를 마치고 여호수아서에 들어서면, 이제부터 전쟁 이야기입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시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살육이 허용되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가나안 전쟁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의 전쟁은 상대방을 진멸하는 무서운 전쟁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쟁의 승패 가운데 여호와는 깊이 개입하시는 “용사이신 하나님”(God the Warrior)입니다. 저는 주변의 기독교를 비판하는 분이 ‘하나님은 잔인한 분’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그 내용 때문에, 성경 독자에게도 종종 함정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쟁의 혹독한 이야기를 읽으며, 신자들도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선하신 하나님이시니 알아서 잘하셨겠지’라는 생각부터 시작하여, ‘정말 왜 그랬을까,’ ‘하나님 너무 무섭네,’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신가,’ 혹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가 봐’ 등 별별 생각을 다 합니다. 더구나 여리고 성의 사람을 남겨두지 말고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아간이 전리품을 남긴 것으로 아이 성 전쟁에서 패배한 것, 아버지의 불순종으로 아간의 가족들이 모두 죽게 된 경우는 일반 상식으로도 좀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불신자는 더욱 어렵지 않겠습니까?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에서 반복되는 명령입니다.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신 20:16-17).
여기서 ‘진멸하라’는 말은 “하람”이라는 동사를 두 번 겹쳐 사용하였습니다. ‘하람’이라는 동사는 다분히 종교적인 의미가 풍기는 단어입니다. 신에게 드리다, 봉헌하다, 성별하다, 바치다, 철저히 파괴하다, 박멸하다, 쪼갠다 등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진멸”이라는 명사 “헤렘”(herem)이라는 말이 나왔고, 진멸된 도시로서 “호르마”(민 21:3)라는 명칭도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단어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숨길 수 없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살그머니 지나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중대한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다.
진멸, 헤렘의 핵심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와 기르가스 족속은 심판 대상입니다. 심판의 이유는 소돔에 이른 천사와 롯의 가족에게 한 행위를 보면 대략 짐작됩니다. 모세는 유대 민족을 통한 가나안 족속의 심판이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신 9:5)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에 나오는 거의 모든 명령은 당시 가나안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개혁과 교정책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시대에 아모리 족속의 악을 벌써 보셨지만, 500년 동안 심판을 미루시고 오래 참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족속의 죄가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라”(창 15:16) 말씀하십니다. 더구나 이후의 모든 전쟁이 진멸, 헤렘도 아닙니다. 쫓겨나면 살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소돔의 백성과 고모라의 관원으로 전락한 후, 그들도 가나안에서 쫓겨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도 심판하셨습니다. 편파적이지 않습니다. 노아 홍수라는 물 심판도 미래의 불 심판도 하나님의 정의로운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사랑만 해야한다’ 말하기에 현재의 인간과 세상이 너무도 뒤틀렸고 썩었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재단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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