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신약 속의 제국주의 문명 비판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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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환자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강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슨 강의를 할까요? 유대인이며 유대교 신학과 철학에 능한 야곱 타우베스(Jacob Taubes)는 1987년 2월 23-27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신학부에서 마지막 강의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인 수요일을 병원에서 지내고, 월, 화, 목, 금에 걸쳐서 하루 3시간씩 로마서를 강의했는데, 이는 바울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었습니다. 그의 강의는 많은 주석과 해석을 곁들여 『바울의 정치신학』이라는 이름으로 1993년에 독일에서 출판됩니다. 

『바울의 정치신학』이 제공하는 많은 다양한 통찰력 중 가장 두드러진 주장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에 한정되지 않고, “로마에 대한 선전포고로서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모세는 같은 연장선에 있으며, 이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나라의 백성을 일으키는 것”이었다고 단언합니다. 그는 로마서는 로마에 대한 정치적 도전이며, 제국에 저항하는 신정 공동체적 문서이고, 이런 맥락에서 로마서 9-11장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타우베스의 주장은 많은 성경신학자들이 복음서와 바울서신을 종교적인 문서, 교회 내적 한계 안에 있는 가르침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론이라 하겠습니다. 타우베스의 시각에 몇 가지 오해를 불식시켜야 할 점이 없지 않겠으나, 유사한 주장을 가진 기독교 내의 신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성경신학자로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전문적 소견을 가진 리처드 보쿰(Richard Bauckham) 역시 계시록이 단지 로마 제국에 대한 종말론적 회피가 아닌 문명 비판과 대안 제시로 해석하여야 함을 주장합니다. 2011년에 발간된 그의 책, 『정치 속의 성경: 성경을 정치적으로 읽는 방법』은 성경의 메시지, 무엇보다도 계시록의 메시지가 탈정치적 가르침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 지금과 같이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를 구별하여 보는 분석적 시각은 약하거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황제 숭배와 같은 지도자들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의 요구 앞에서, 영원한 왕이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며 세상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입니다. 보쿰 교수에 의하면, 국가와의 이러한 갈등과 이어지는 박해는 계시록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며, 계시록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로마에 대한 비판을 기독교 박해 문제에만 제한하지 않고, 로마의 제국주의적 권력과 그 악을 드러내려 했다고 바르게 주장합니다. 

   

로마 제국에 대한 명백하고 맹렬한 계시록의 비판은 여러 가지 숨겨진 암호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또한 초기 제국의 문명 비판을 통하여 저항의 논거 또한 제공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속적인 정치 단체는 아니지만, 새로운 세계관 속에서 세워진 공동체임을 자각하고 사회신학, 정치신학의 새로운 싹을 키우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선지자적 비판을 담은 상징은 3가지로 계시록에서 제시됩니다. 그 첫째는 계시록 13장의 짐승이며, 둘째는 계시록 17장의 음녀, 그리고 셋째는 계시록 18장의 바벨론입니다. 

   

짐승이라는 상징은 로마 제국의 군사적 능력과 폭력성을 말합니다. 둘째로 음녀로 표현된 로마는 수많은 사치품과 빛나는 상품들로 세상의 왕들을 유혹하는 경제적 미혹입니다. 셋째로 바벨론은 대도시 로마의 다른 상징으로 정치, 경제와 문화의 총체적 왜곡을 가져오는 영적 타락 곧 “귀신의 처소”가 됨을 폭로합니다(계 18:2-3). 요한 사도의 팍스 로마나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은 강대국 국제정치의 그늘을 조망하게 하는 놀라운 통찰력입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