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복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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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은 2022년의 마지막 주일이자 성탄절이었습니다.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이 주일 예배 시간에 모였습니다. 영어부와 연합으로 드린 예배의 하이라이트는 어린아이들의 성탄 축하 공연과 세례식이었습니다.
메이슨이 첼로를 들고나왔습니다. 메이슨이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어 그동안 연습했던 첼로 연주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은 활이 움직이자 전문 연주자와 같은 진지한 표정이 되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연주했습니다.
정성을 다한 연주가 끝나자 큰 박수가 나왔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메이슨의 활이 다시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따다 단 딴 따다다 단 딴 따다다 단 딴 따다다 단 딴 단 딴딴 따다단 단 딴 따다 단 따다 단 따”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의 후렴구였습니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초등학생이 연주하기에는, 그것도 온몸에 감정을 실어 연주하기에는 쉽지 않은 곡이었습니다.
메이슨이 이 찬송가를 연주할 때, 몇 년 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예배 후에 메이슨이 본당에 들어오더니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불러 보라고 했더니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이 찬양을 외워서 부른다고 신기해하며 웃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사실 이 찬양은 메이슨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고 답답할 때, 때로는 감사가 넘칠 때 부르던 찬송이요, 믿음의 고백이요, 기도였습니다. 엄마가 들려주던 찬송을 따라 부르던 메이슨이 이제는 훌쩍 커서 첼로로 그 찬송을 연주하는 것을 보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렸습니다.
메이슨의 첼로 연주에 이어 이번에는 두 살 반 된 지아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하 - - - 세 - - 이 - - 사 - - - 도옥 - - - 주 - - - ” 알아듣기 힘든 암호와 같은 말을 잇고 있는데, 가만히 듣다 보니 무슨 말인지 들렸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로 시작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긴장한 듯 허공을 응시한 채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는 아이를 보는 교우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아의 성경 암송이 끝나자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유아부 아이들이 음악에 맞춘 율동으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음악이 제때 나오지 않았고, 아이들의 율동도 제각각이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 교회에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소피아, 사무엘, 스카일라, 엠벨리, 시아, 시온’ 성탄 주일에 유아 세례를 받은 아이들입니다. 세례를 통해 이 아이들이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축하했습니다. 부모에게는 이 아이들을 신앙으로 양육하겠다는 다짐의 시간이었고, 교우들은 자신들의 세례를 기억하며 이 아이들을 기도와 사랑으로 돌보며 신앙인의 모범을 보이겠다는 결단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메이슨이 연주했던 ‘은혜’, 지아가 성경 암송을 통해 들려주었던 ‘사랑’, 아이들이 율동과 함께 몸으로 보여주었던 ‘기쁨’, 유아 세례를 통해 다시 한번 되새긴 ‘구원의 약속’이 어우러져 ‘복음’이라는 메시지가 울려 퍼진 주일 예배였습니다.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오른쪽 옆구리가 아팠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가끔 왼쪽 옆구리가 결렸던 적은 있었지만, 오른쪽 옆구리에 통증이 오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옮긴 적도 없는데 왜 옆구리가 쑤실까 생각하다가 원인을 발견했습니다.
전날 성탄 주일에 아이들을 안고 유아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생각이 들자 옆구리의 통증이 갑자기 감사의 제목으로 바뀌었습니다. 세례 때문에 비록 옆구리는 아팠지만, 더 많이 세례를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아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도 그러셨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옆구리가 찔려서, 손에 못이 박혀서 아프더라도 더 많은 이들을 구원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고통을 기쁨으로 감당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좋은 소식 즉, 복음입니다. 그 좋은 소식을 마음에 새기고 ‘다시 복음으로!’ 일어서는 새해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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