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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꽃 이야기] 카스켓 스프레이(Casket Spray) 관 위에서 땅 아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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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2-05-06 | 조회조회수 : 3,4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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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장례문화는 불교와 무속신앙이 삶의 전반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한국의 장례문화와 여러 가지로 다른 점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가 배경인 미국에서는 죽음을 절망이나 슬픔, 삶의 종착역이나 끝이 아닌 소망과 기쁨, 영원한 생명의 출발점이요, 새로운 시작으로 봅니다. 장례식장도 'Life Celebration Home 생명의 축제의 집’이라 부르고, 장례예배 자체도 ‘Celebration’ 즉 축제의 예식으로 드립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장례식에 참여도 하고, 직접 집례도 했으며, 꽃집을 한 이후로는 수시로 장례식장에 꽃을 배달하고 있지만 미국인들의 장례식에서 어느 누구도 통곡하며 큰 소리로 우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며,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좋은 곳으로 보내고, 앞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환송식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공동묘지가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것은 죽음이 우리에게서 멀리 있거나 낯선 것이 아니고, 아주 가까이에 있으며 매우 친근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묘지를 보면서 동네를 지나다니는 것이 우리에게는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닌 당연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주택가에 술집과 모텔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한국보다 훨씬 더 건전하며 교훈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미국인들은 장례시 우리 한국인들과는 달리 조의금을 전하는 대신 대부분 꽃을 보냄으로 고인과 유족들에 대한 애도를 표합니다. 그러므로 장례식장에 가보면 각종 standing spray, standing wreath들과 함께 꽃병에 꽂은 꽃들, 여러 모양의 컨테이너에 디자인한 각 종류의 꽃들과 함께 큼직한 peace lily 플랜트와 작은 사이즈의 dish garden 등 가족들, 친척들, 친구들이 보낸 꽃들이 식장을 가득 메운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고인에 대한 사랑과 우정,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보낸 그 모든 꽃이 각각 다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혹 다른 꽃들은 없어도 이것만은 꼭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관 위에 올려 놓는 카스켓 스프레이(casket spray)일 것입니다. 시신이 누워있는 관 위에 올려놓았다가 그 관과 함께 유일하게 땅 아래까지 내려가는 이 카스켓 스프레이만큼은 다른 사람이 아닌 고인의 남편이나 아내 혹은 부모나 자녀들이 담당합니다. 그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서 아내는 그 어떤 꽃을 디자인할 때보다 더욱 특별한 정성과 세심한 손길로 카스켓 스프레이를 만듭니다.


미국에 온 이후 40여 년을 지나는 동안 우린 한 번도 가족의 장례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무병장수가 가족의 내력인지 그동안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장례를 치른 사람도 없었는데, 그런데 지난 일 년 사이 형수, 어머니, 큰 매형 세 분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와 별 관계없는 사람이나 비교적 멀리 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는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항상 곁에 있던 가까운 가족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갑자기 죽음이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옵니다. 언제나 아주 나중의 일로만 생각하던 죽음이 이제는 다음에 내 차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족의 장례는 내게 일깨워줍니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점점 100세가 가까워가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관한 생각을 언제나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장례식만큼은 우리 교회에서 내가 예배를 집례하고, 어머니를 가장 잘 아는 내가 설교도 할 텐데 눈물이 나서 말씀을 잘 전할 수 있을까? 등등….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목회를 마치고 난 이후까지 99세가 되도록 장수하셨고, 어머니 장례에 대한 나의 모든 계획은 다 허사가 됐지만, 그 대신 아내는 어머니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인 카스켓 스프레이를 정성을 다해 만들었고, 나는 장례식 설교가 아닌 그 꽃을 어머니 관 위에 올려드렸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감사, 일생의 모든 아름답고, 아프고, 즐겁고, 눈물겨운 기억들을 담은 그 꽃이 어머니의 시신과 함께 땅 아래로 내려갈 때 그 카스켓 스프레이는 내게 설교보다 더 큰 감동이었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부모님을 먼저 보내는 자녀들, 자녀를 먼저 보내야 하는 가슴 아픈 부모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먼저 보내는 이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아니면 이 세상엔 어떤 해답도 없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꽃들도 시들어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꽃들로, 우리의 몸도 병들고 썩지 않는 영원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며, 나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어머니도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도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는 소망만이 우리가 끝까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나는 꽃가게를 하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로서의 사명이 끝난 지금 나는 설교가 아닌 카스켓 스프레이를 배달함으로 그 영원한 소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어머니와 형수의 장례식에는 빨간 장미와 백합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으로 카스켓 스프레이를 만들었고, 큰 매형 장례식에는 큰 누님의 요청에 따라 Calla Lily와 Birds of Paradise의 ‘yellow'를 주제로 디자인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며 이렇게 아름답고 값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생애를 헌신한 분들을 위해 이런 마지막 선물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이 아내와 내겐 말할 수 없는 은총이요, 특권이었습니다.


이근호(다니엘) 목사는 1977년에 도미, George Mason 대학에서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Central Bible College와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 전공했으며, 1987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0년간 이민 목회와 함께 지난 25년간 미국 전역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했고, Billy Graham의 LA Rose Ball 전도집회에서 통역 설교를 담당했다. 2017년 목회직을 사임한 후 2018년 2월부터 버지니아에서 Lake Ridge Florist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물이 흐르는 곳에 식물은 자란다"(베드로서원),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감동 있는 삶"(쿰란출판사), 다니엘 꽃이 야기(Daniel's Flower Story)"(도서출판 레드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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