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하나님의 영광의 관점(The Perspective of the Glory of God)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칼럼

홈 > 문화 > 칼럼

[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하나님의 영광의 관점(The Perspective of the Glory of God)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2021-07-06 | 조회조회수 : 2,153회

본문

Jubilate II 

Church Music in Worship and Renewal

By Donald P. Hustad

                                                                                                                                               

기독교에 헌신적인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 어떻게  “좋은 교회 음악”을 서구문화의 최고의 예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은 탁월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써 탁월한 예술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창조한 인간들이 그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든 안하든 상관 없이 그들의 일(작품 the work)에 의해 영광을 받으신다는 의견은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덜(less)”한 것(가스펠이나 포크송 같은)보다는 “(순)고급 예술(high art)”(바하 모테트 같은)에 의해서 더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음악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미의 제물”이 아닌가요? 그리고 구약 시대에서의 희생제물은 가능한 최고의 것이 되어야 하지 않았나요?

   

교회에서 우리의 말과 멜로디와 행동은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offerings)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과 음악의 미적 탁월성(quality)에 따라 우리를 용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구 언약과 새 언약 모두에서 사람들은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희생에 의거하여 하나님과 화해하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에 관련되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헌물은 회개(penitence)입니다 ㅡ “상한 심령의 제물”(시51:17). 

   

히브리인들이 그들의 최고의 제물을 하나님께 가져온 것처럼,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최고의 자신(self)(롬12:1)과 그들의 가장 탁월한 “찬미의 제물”(히13:15)을 사랑의 표현으로 가져오기를 부탁하십니다. 그들의 “합당(reasonable)”하고 “영적인 예배”를 요청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최고의 말과 우리의 최고의 음악과 우리의 최고의 연출을 드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 - 바로 나의 것 -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의 훌륭한 관리책임(stewardship)일 뿐 아니라, 헌신과 전념에 대한 우리의 충실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은 정결예식을 위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예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우리의 헌물에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그의 은혜에 대한 가슴 저미도록 상기시켜 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눅2:22-24). 레위기 12장에 따르면, 그러한 경우에 넉넉한 가정은 한 마리의 양을 가져오지만, 가난한 집(요셉의 가정처럼)은 두 마리의 비둘기를 바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비둘기장에서는 가장 좋은 것이어야 했습니다만, 그래도 그것은 겨우 비둘기라는 헌물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만일 한 교회와 지도부가(그 책임을 심사숙고 끝에) 그들 교회의 최고 찬미의 제물을 부자들의 양의 헌물에 해당하는 브람스의 모테트나 존 루터의 앤섬이나 데이비드 클라이드데일의 편곡, 또는 그보다는 조금 더 간단한 곡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한다면, 그 경우에 그중에서 가장 적합한 유형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곡을 가능한 한 최선으로 내놓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순수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러한 제물 중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고 더 영광을 돌린다고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주제넘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심미적 관점을 감소시키는 우상숭배적 의인화에 대해 유죄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고급 예술 음악(high art music)이 하나님의 귀를 간지럽게 하여 기쁘고 만족스럽게 한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물의 그 어떤 예술적 재능에도 감명받지 않으십니다(not impressed), 비록 요한 세바스찬 바흐에게서도.... 


어린 자녀가 유치해 보이게 낙서한 종이를 들고 오는, 애정 어린 부모로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그리고 여기서 저는 C. S. Lewis의 문장을 조금 부실하게 인용한 저의 해석을 제공합니다). “이것 봐, 아빠, 예쁘지?” “그래, 아들아, 멋있구나, 우리 언제 한 번 불러(sing?)보자; 근데 그 동안 모두가 볼 수 있게 냉장고 문에 붙여 놓자구나!”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적 자녀들 즉, 요한 세바스찬 바하든지, 혹은 존 루터든지, 아니면 존 아무개든지 상관없이 그들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관심과 용납을 보여 주는 한 작은 그림일 수 있습니다(위대한 음악을 사랑하는 분에 대해 그다지 불손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과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C. S. 루이스에 의하면(제1장에서 인용된 도발적 논리에서), 사탄의 권능까지도(그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그 능력을 부여받은 이래) 결국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그에 반해서 대조적으로, 비록 구석기 시대적 문화에서도 가장 겸손한 삶을 사는 신앙인들은 그들의 음악적 예배의 헌물(musical worship offerings)을 성실하게 가져올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KCMUSA, P.O. Box 2306, Fullerton CA 92837 |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