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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 영화 ‘미나리’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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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1-02-22 | 조회조회수 : 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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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배달된 ‘타임’지는 ‘떠오르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을 소개하고 있다. 차세대 리더들이라니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쭉 훑어보니 아따, 이건 쪽 팔리는 일 아닌가? 그 100명 가운데 겨우 이름이라도 아는 정도가 3명뿐이라니!


아무리 젊은이들이긴 해도 그 정도면 빵빵하게 세계에 알려진 사람들일텐데 겨우 3사람이라. . . 나는 벌써 이 세상과의 교감상태가 그 정도로 둔감해지고 있다는 증거인가?


그 세 사람 중 한 명은 한국인이다. 유일하게 한국의 장혜영이 이름을 올렸다. 정의당 국회의원이라고 한다. 나머지 둘은 내가 최근에 접한 이름. 하나는 배우 앤야 테일러-조이. 넷플렉스 오리지날로 방영된 "퀸즈 갬빗"이란 영화의 주인공, 체스 신동 베스 하몬역을 연기했던 여배우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있구나! 감탄을 하면서 갈채를 보낸 적이 있다.


또 하나는 시(詩)란 이런 위대한 파워를 갖고 있다는 걸 단칼에 보여준 하버드 출신 청년 계관시인 아만다 고먼이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시 한편으로 그는 순식간에 미국을 흔들어 놓았다.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이란 시 한편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이 나라는 “깡마른 흑인소녀, 노예의 후손, 싱글맘 아래 자라난 자신과 같은 사람도 대통령을 꿈꿀 수 있는 나라”라고 노래한 뒤 “빛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가 그 빛을 직시할 용기가 있고, 스스로 그 빛이 될 용기가 있다면”이라고 끝을 맺는다. 하루아침에 그녀의 트위터 팔로워가 150만 명으로 늘어나는 폭발적인 유명세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세대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은 못 올렸지만 장차 이 나라를 이끌고 갈 자랑스런 차세대 일꾼들을 나는 보았다. 영화 "미나리"에서였다. 일반 개봉관에서 볼 수 없는 영화라서 카톡방으로 주거니 받거니 해서 보는 영화라고 들었다. 어렵사리 어디서 파일을 구했는지 우리 집 TV앞에서 드디어 개봉에 성공한 영화 "미나리."


이 영화에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하나는 바퀴 달린 집(모빌하우스), 넥타이 매고 가는 교회, 전천후 가족이동수단 스테이션 왜건, 서울서 가져온 고추장, 냄새나는 할머니 . . . 사정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던 ‘바퀴 달린 집’에서 이민생활을 출발했다. 미국에 도착하던 첫날밤은 보통 친척집 리빙룸에서 송사리 떼처럼 한가족이 모여 잤다.


마켓도 왜건, 교회도 왜건, 학교도 왜건, 왜건은 이민자가정의 전천후 교통수단이었다. 왜건은 지금 눈을 씻고 봐도 찾을 길이 없다. 그리운 스테이션 왜건. 지금이야 웬만한 도시의 한인 마켓에 고추장이나 된장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때는 서울에서 오는 친척 편에 고추장이나 된장, 마른 오징어를 밀수입해서 먹고 살았다. 애 봐줄 사람이 없어서 할머니를 직수입하던 때도 그때였다. 그러나 크는 아이들은 할머니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투덜대곤 했다. 미나리에 나오는 그대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은 대개 꾀죄죄한 일상이지만 주일이면 넥타이에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가족들과 함께 교회당에 간다. 믿음이고 뭐고 그냥 가야 되는 곳으로 알고 다닌 곳이 교회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교회는 미숙아표 한인이민자들을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숙성시켜 주는 요람이 되었다. 그 양복에 넥타이란 멋진(?) 드레스코드 전통은 어디다 말아먹고 자꾸 잠바때기나 남방을 걸치고 교회당에 나가야 신식 신자인 것처럼 길들여 놓은 사람들은 누구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 가슴 뭉클했던 아름다운 장면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자신의 실수로 사위집 농장 창고에 불을 내고 죄책감을 억누르며 실성한 듯 어디론가 하염없이 걸어가고 있는 할머니를 뒤따라 가서 그게 길이 아니라고, 우리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할머니를 돌려 세우는 두 손주, 앤과 데이빗의 모습이었다. 결코 철없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가족사랑은 그런 절망가운데 더욱 빛이 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험난한 이민생활을 통해 경험해 왔다.


이민 1세대의 절망과 눈물을 보고 성장한 우리들의 차세대 데이빗과 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미 연방의사당에도 있을 것이다. 백악관에도 있을 것이다. 대학교와 병원과 공장, 월스트릿이나 군대에도 있을 것이다. 아니 50개주 어느 도시, 어느 마을에도 꽃피는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오클라호마에서 민들레처럼 퍼져나가 미국 산야를 덮어가며 할머니의 눈물, 아버지의 절망과 어머니의 기도를 가슴에 새기며 민들레보다 더 샛노랗게 인생의 절정을 살아내고 있을 우리 후손들이 있기에 바퀴 달린 집에서 시작한들 우리들의 이민 여정은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


이민자들을 어느 때는 샐러드볼이라고 불렀다가 어는 때는 멜팅팟? 또 바람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서 물 없는 곳에서도 끈질기게 꽃을 피우는 민들레로 비유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미나리는 우리 이민자들이라고 했다. 어디에 떨어져도 죽지 않고 쑥쑥 자라주는 생명력 하나만은 허다한 잡초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 미나리. 민들레가 되었던, 미나리가 되었던 이제 우리들의 이민 역사도 120년을 훨씬 넘겼다.


영어 때문에 숨이 막히고 알게 모르게 당하는 편견과 조롱을 참고 또 참아내며 고단하게 걸어온 이민 여정이 결코 실패가 아니라고, 역경을 이겨내며 세탁소, 마켓, 리커 스토어, 병아리 감별사로 일궈낸 이민역사는 결코 실패가 아니라고, 우리는 여전히 대를 이어 희망의 언덕을 오르고 있는 중이라고, 미나리는 그런 찬사와 위로를 담아 우리 이민사회에 바치는 헌사로 느껴졌다.


그래서였는가? 미국영화연구소(AFI)는 ‘2020년 올해의 10대 영화’에 미나리를 선정했다. 배우 윤여정과 정이삭 감독은 수많은 영화협회, 비평가협회로부터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있다. 오는 4월 오스카 시상식에서는 어떤 상을 받게 될까 궁금하다.


아만다 고먼처럼 이름을 드러낸 차세대 영향력 있는 100인은 아닐지라도 희망의 언덕 한구석을 꿋꿋하게 오르고 있는 코리안 아메리칸 차세대들은 우리에게 너무 간절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들도 “빛을 직시할 용기가 있고, 스스로 그 빛이 될 용기가 있다면” 분명 이 세상에 눈이 부시도록 영향력을 미치는 떠오르는 별이 될 것이다. 영화 "미나리"가 그렇게 속삭여 주었다.


조명환 목사(크리스천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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