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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에피소드 3 - 내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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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11-16 | 조회조회수 : 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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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나는 대단할 것 없는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 놓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가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주위에는 많은 주의 산만증 환자가 있다. 그러나 이 분야를 주업으로 하고 있는 나조차 실수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나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이런 장애가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간다. 나의 조국에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을 거라는 나의 추측은 성미 급하고, 분노를 쉽게 조절하지 못하던 내 아버지 같은 분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천 년의 유구한 세월 동안 중국, 일본, 몽골 등으로부터 약 팔백 번의 침략을 받았다.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하려던 많은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다. 오히려 생각하기도 전에 자신을 위한 Fight or Flight 반응을 했던 사람들이나 ‘상자 밖의 생각’을 할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 남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현재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다수가 아닐까라는 상상을 가끔 해 본다.


유럽인들이 주의 산만증을 ‘아메리칸 병’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국에서 아무리 종교적 탄압이 심했다고 하더라도 청교도들 무리가 고향 땅을 등지고 덜컥 메이 플라워호에 올라 신대륙을 향해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개개인의 속성에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충동성이 강하고, 생각하기 전에 행동이 앞서며, 한 가지에 몰두하면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리는 기질’을 가진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 미국을 이끌어 가고 있다면 주의산만 장애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주의 산만증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게 훌륭한 점도 많이 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유명한 저술가, 발명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벤쟈민 후랭클린 등이 모두 ADHD 증상이 있었다. 건축에 대한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던 나의 아버지는 전쟁 후 모든 것이 무너진  땅에서 건축업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교육시키는 창조력과 교육열을 발휘했다. 


주의산만증을 가지고 태어난 내 손자는 지루한 공부는 질색이지만, 새로 이사간 나라 덴마크의 친구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의 출중한 비디오 게임 실력이 한 몫을 했을 터이다. ‘빨리, 빨리’는 한국인들이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참을성의 결핍’을 탓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엇인가에  올인하면 열심히 목적을 향해 전진하는 맹렬함을 뜻할 수도 있다.  <계속>



- 수잔 정 박사의 신간 "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중에서 – 


수잔 정 박사/ 소아정신과 전문의, 전 카이저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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