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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에피소드 1 - 큰 딸 은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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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10-20 | 조회조회수 : 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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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의 따님이 특별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 월요일 아침 9시, 조례 시간에 맞추어서 학교 강당으로 와 주세요. 단, 학생에게는 비밀로 해 주십시오.”  


큰 딸 은하가 다니는 고등학교 교장실에서 온 전화였다. ‘도대체 무슨 상일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만 아이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했으니 입을 꾹 다물고, 태연한 척 하며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 오전에 예약된 환자들의 시간을 조정하고 학교에 가기로 했다. 환자들에겐 무척 미안한 일이었지만 고맙게도 아이 엄마로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해 주었다. 마취과 의사인 남편은 새벽에 수술 받을 환자들을 방문하고, 마취 상담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스케줄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


은하의 말보로여자중고등학교(Marlborough School)는 백삼십 년 역사를 가진 사립학교로, 로스엔젤레스 한인타운 서쪽, 행콕팍에 있다. 학교 주위에는 오래된 저택들과 유서 깊은 윌셔 골프장이 있어서 이곳이 시내 한복판임을 잊게 한다. 학교 강당에는 이미  은하 친구들의 부모 몇 분이 뒤쪽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오십 대 초반의 교장선생님 바바라가 강단으로 나와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학생이 받는 특별상이 어떤 상인지 설명했다. ‘영어 작문상', ‘수학상', ‘자연과학상'...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은하의 이름은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내가 못 들은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데 비로소 은하의 이름이 들렸다. ‘봉고북상(Bongo Drum Award)’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 순간 내 속에 나도 모르게 잠재해 있던 지극히 한국적인 편견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아프리카 북 좀 잘 치는 것에 무슨 상을 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큰 딸에게 거는 기대는 지나칠 만큼 컸던 것 같다. 이 아이는 아빠를 닮아서 수학이나 물리 분야에서 뛰어난 지능을 보였다.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자 대부분의 또래 아이들처럼 집 근처 공립학교에 보내자는 남편의 의견과 달리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등록금이 대학 교육비에 버금가는 말보로여학교에 보내자고 주장했다. 남편은 아마도 ‘내가 다녔던 여학교와 비슷한 환경에서 딸을 교육시키고 싶다'는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는지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그리하여 은하는 엄마의 큰 기대를 등에 업고 LA 최고의 명문 사립 여중고로 꼽히는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빠가 물어보는 고등 수학 문제에도 척척 대답했던 것을 감안하면 은하의 학교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 학년 60명 정도의 학생 중에서 은하의 성적은 5등 정도였다. 좀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대부분 숙제를 제때에 못 했거나, 해놓고도 잊어버리고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숙제를 집에 놓고 왔다며 급히 학교에 가져다 달라는 연락이 와서 점심 시간에 집에 들려 과제물을 학교에 가져다 준 적도 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은하가 고등학교 졸업 후 북가주의 버클리 대학에 가서 집을 떠난 후에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애가 다니던 미용실이나 책방에 들르면 “은하가 두고 간 우산이 있는데요", “스웨터를 놓고 갔어요"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은하는 대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그토록 사랑하던 아빠를 심장마비로 잃고 심한 우울 증에 시달렸다. 어느 날, 나는 유대인 남자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몹시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은하가 자기 물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있어요.” 나는 대학교 기숙사에 가서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원래 은하는 버클리에 있을 때, 남자 친구와 함께 한인 이민자 노인들의 미국시민권 시험 치르는 것을 도와주는 일을 했었다. LA로 돌아온 후에도 같은 일을 계속했다. LA에 영어가 힘든 노인들에게 문제지를 연습하고 답을 가르쳐 드리고 시험 당일에는 자신의 차로 그 분들을 시험장에 모셔다 드리기도 했다. 가는 도중에도 노인들에게 계속 용기를 북돋아 드렸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자신을 회복하자 얼마 후 버클리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전기 공학 전공으로 대학을 마치고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다. <다음 번 칼럼에서 계속됩니다.>


- 수잔 정 박사의 신간 "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중에서 


수잔 정 박사/ 소아정신과 전문의, 전 카이저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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