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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 ‘긍휼지심’ 수은주를 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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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10-17 | 조회조회수 : 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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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위에는 ‘LA미션’에서 보내 온 편지 한통이 눈에 띄는 곳에 꽂혀 있는 중이다. LA미션은 1936년 엘드릿지 목사란 분에 의해 창립되어 LA다운타운 빈민가에서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해 주고 있는 역사적인 비영리단체다. 우리 아이들이 하이스쿨에 다닐 때 우리는 매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가족 숫자대로 노숙자들 감사절 음식준비를 위해 도네이션을 해 오곤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소식이 없다 싶었는데 금년엔 아들 이름으로 메일이 왔다. 분가해서 사는 아들대신 곧 내가 체크를 보내려고 리턴봉투를 보관하고 있다.

봉투에 든 넉 장의 밀 티켓(Meal Ticket)은 한 장에 5불, 이 5불이면 2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써놓고 있다. 그리고 성경말씀도 적혀 있다. 시편 33:20절의 말씀이다. “야훼는 우리의 도움, 우리의 방패, 우리는 애타게 그분을 기다린다”(공동번역).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밀 티켓 몇 장을 선교단체에 보내는 것이 ‘긍휼지심’ 면피용으로 적당한 것일까? 내가 생각해도 참 쪼잔하고 우스운 발상이다. 그 돈 몇 푼으로 면피가 된다고? 프리웨이 램프에서 ‘HELP’라고 쓴 종이 판대기를 들고 서 있는 노숙자들에게 잔돈 몇 푼을 집어주는 것으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행동에 옮겼다며 스스로 영웅적 크리스천으로 착각하는 유치 찬란함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금년 봄 광풍처럼 세상에 퍼져갈 때 멕시코 깜뽀를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선배 목사가 카톡으로 보내온 “애들이 굶고 있어. 큰 일 났다!”란 말이 생선가시처럼 아직도 내 목에 걸려 있는 중이다. 깜뽀는 멕시코 농장주변에 널려있는 원주민 집단 숙소다. 멕시코 시민권도 얻지 못하는 이들은 농장에서 그냥 죽어라 일 하는 노동자들이요, 이들이 사는 곳이 깜뽀다.

거기엔 전기는 물론 수돗물도 없고 화장실도 없다. 학교도 없고 희망도 없다. 없는 것 천지다. 도무지 사람 사는 곳이라 느껴지지 않는 그곳을 둘러보노라면 눈물이 절로 나온다. 배고픔이 언제나 상존하는 곳, 그 깜뽀의 어린이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얼마나 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을까? 굶고 있다는 선배의 말에도 못들은 척 지난지가 몇 달이 되었다. 이러고도 긍휼지심 어쩌고를 말하고 있는 내가 참으로 가소롭고 창피스럽다. 어서 얼마를 챙겨 거기 보내야 내 목에 가시가 빠질 것 같다.

금년 노벨평화상은 세계식량계획(WFP)에게 돌아갔다. 노벨위원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속된 골프용어를 빌리면 ‘지잘공’이다. ‘지금까지 친 공 가운데 가장 잘 친 공’을 지잘공이라 흔히 말한다. 금년 노벨평화상은 노벨위원회의 지잘공인 셈이다.

매년 약 88개국 1억명에 가까운 빈곤층을 돕고 있고 분쟁, 내전, 가뭄, 홍수 등 자연 재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도 식량을 제공하고 있는 UN기구다. WFP는 1995년부터 25년간 매달 100만 명에 가까운 북한의 임신부와 어린이를 기르는 어머니, 어린이들에게 영양식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평화상은 당연히 이런 곳에 주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번 평화상은 배고픔이 뭔지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세계 빈곤층의 현실을 일깨워준 소프트 펀치였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비만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다. 너무 잘 먹고 살다보니 불어나는 살을 주체할 길이 없어 다이어트에 매달리는 바람에 다이어트 식품시장의 규모가 2018년 기준 53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미국 성인인구 비만율은 40%. 다시 말해 10명중 4명은 영양과잉상태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품가운데 1/3은 그냥 쓰레기로 버려진다. 양으로 따지면 13억 톤, 돈으로 환산하면 약 4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버려지는 게 그뿐인가. 불필요한 식품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데 쓰이는 물, 토양, 에너지, 노동력 및 자본도 함께 내버려진다. 이런 황당한 낭비 따위에 양심의 가책은 없다. 마침내 비만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코로나 백신이 나오기 전 최고의 백신은 식량”이라고 외치며 노벨위원회는 WFP에 상을 준 것이다.

신명기에서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긍휼은 눈부시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이 이삭줍기를 하러 나서던 보아스의 황금벌판은 바로 긍휼의 벌판이었다. 예수님도 사람들의 배고픔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벳세다 들판의 오병이어 기적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으로 배를 채워주고 싶어 하신 예수님의 긍휼지심이 발단이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이른 새벽이면 다운타운 노숙자들을 찾아나서는 수많은 한인교회들이 있다. 뜨거운 국물냄비와 빵을 들고 노숙자의 주린 배를 채워주려고 약간의 육체적 수고와 불편을 마다하지 않고 새벽길을 헤치고 나서는 이들의 발걸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노숙자들 뿐 인가? 배고픈 곳은 사실 우리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들에게 측은지심을 갖고 지갑을 열수 있다면 세계식량계획이 따로 있는가? 우리가 바로 그들이다.

WFP의 모토는 ‘굶주리는 사람은 사라져야 한다’라고 한다. ‘제로 헝거’(Zero Hunger)를 외치며 배고픈 곳을 찾아나서는 이들은 ‘식량 위기 팬데믹’이 우려된다면서 전 세계 2억7,000만 명이 기아 위기에 놓일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우리가 무슨 통뼈라고 지구촌의 그 천문학적 숫자의 기아위기를 책임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밭’에 떨어진 이삭들은 배고픈 이들을 위해 그냥 남겨두고 지나치는 작은 긍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코로나 때문에 세상 모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굶주린 이웃을 향한 우리들의 긍휼지심 수은주는 상승곡선을 그려야 마땅하다. 금년 노벨평화상 수상단체가 우리에게 그렇게 말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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