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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코로나 제발 제발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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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08-01 | 조회조회수 : 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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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초기 나는 내 블로그(http://blog.kcmusa.org/yeqoim)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같은 블로그에는 재림의 징조’,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관한 글이 있다.

나는 그것으로 어느 정도 코로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후 계속되는 팬데믹의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허우적거리고 비틀거리며 방향을 잃은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누군가는 기사를 올리고 누군가는 책을 쓰고

누군가는 1945년에 나왔던 책을 개정판으로 내놓았다.

나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은 화장실 설계도만,

한 사람은 주방 설계도만, 한 사람은 아이들 방 설계도만을 보고

그것이 마치 모든 것인 양 각각 건축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것이 서양신학의 한계다.

서양 사상 자체가 구분, 구별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과학적 방법이다.

그러나 통합없는 구분, 구별은 하나님의 섭리를 갈갈이 찢어 놓을 뿐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유기적이다.

구별은 해야 하지만 그 구별의 목적은 통합이 되어야 한다.

다음에 , 서양 사상의 비교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하겠다.

 

첫 문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강박을 느낀다.

 

우선 이런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기 시작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인지 아닌지를 살핀다.

타락한 인간의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요셉이 노예와 감옥 생활을 할 때,

모세가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칠 때,

다윗이 소위 광야 학교에서 10년 동안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길 때

그것은 심판이나 징계가 아니고 훈련이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할 때, 몇 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죄가 있는가?

두 번째 과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심판을 시행할 시기가 되었는가?

셋째 말세의 마지막 심판은 어떤 조건에서 오는가? 등이다.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가나안 진멸 등에서

우리는 하나님 심판의 조건을 본다.

그것은 죄악의 관영이었다.

어떤 경우라도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타락했다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결정하셨다가도 우선 기회를 주신다.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경우다.

 

하나님께서는 율법 초기에 안식일을 범한 자를 돌로 치라고 명하셨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온갖 편법으로

안식일을 범하는 백성들에 대한 심판을 보류하신다.

복음의 초기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였다는

이유로 즉각적인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다른 사람들이 간악한 방법으로 성령님을 속이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보류하셨다.

심지어 같은 시기 베드로가 외식을 했음에도 살아남았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율법 초기, 복음 초기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 정도의 순수함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다시 말해서 일벌백계의 심판이었다.

그 이후는 마치 노아 홍수 이후 무지개를 통해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율법 초기 또는 복음 초기처럼 심판하셨다면 모든 인류는 사라졌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제 국지적인 심판은 없다.

그러기에는 말세가 너무 가까웠다.

이제는 궁극적이고 영원한 심판만 남아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이다.

사도신경으로 우리가 고백하듯이 그 분은 저리로서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이것만 남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악이 관영해야 한다.

 

이제는 지금껏 상상도 못하고 볼 수도 없었던 죄악이 폭증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심판의 조건들을 완성할 것이다.

심판인지 아닌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회개하자고 한다.

세상은, 역사는 영원하지 않다.

그것은 주님의 심판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개조차 없어야 한다.

 

예레미야 51절을 보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 심판의 조건이 완성된다.

어설프게 울며 매달린다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회개의 기회는 지나갔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 믿음을 보겠느냐(18:8)고 하셨다.

동네마다 교회가 있고 심지어 LA에는 한 건물에 7개의 교회가 있다.

수를 셀 수 없는 목회자와 기독교 미디어들, 서점들이 있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 진정한 복음을 발견할 수 있는가?

오늘날 교회라 불리는 곳에는 동방 풍속이 가득하다.

이스라엘은 동방 풍속이 가득해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

이것이 마지막 심판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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