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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가 두려운 이유...아감벤과 지젝, 두 좌파 철학자의 마스크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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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뉴스M| 작성일2021-09-14 | 조회조회수 : 14,6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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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없는 인간”/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효형출판 


    “남겨진 시간”, “왕국과 영광”, “호모사케르” 등의 저서를 통하여 새로운 정치철학을 전개해온 이탈리아의 노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팬데믹 시대를 보내면서 “얼굴없는 인간”(박문정 옮김, 효형출판)을 펴냈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마스크가 강요되는 팬데믹 상황을 인문학적으로 검토한 책이다. 그동안 아감벤이 독자들과 소통해오던 조각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인데 매 글들이 발표될 때마다 이탈리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마스크를 쓴, 즉 얼굴없는 인간이라는 제목을 통해 아감벤은 생명정치적 기획으로 전개될 여지가 있는 방역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충분히 논쟁 거리가 될 만한 접근이다.


    백신에 칩이 내장되어 있다거나, 빌 게이츠가 모든 기획의 중심에 있다든가, 대형 제약회사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질병의 과장이라는 식의 음모론적 접근은 아니고 글자그대로 인문적 사유 차원에서 한번쯤은 주의 깊게 귀 기울여 볼 만하다. 독자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아감벤은 방역과잉을 주장하는 여타의 다른 사람들처럼 일단 코로나의 위험성이 정확하게 고지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코로나의 위험은 독감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각 정부의 과잉반응은 예외상태(전쟁과 같은 비상상황으로 인해 자유가 잠시 유보되는 상태)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보건 정책이란 명분으로 시민들의 데이터를 통제하면서 정치적으로 포획하려는 의도를 가진 생명정치적 기획이 우려된다는 게 아감벤의 입장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열린 존재로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다른 이와 의사 소통한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표정으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여 자신의 근본적인 경험을 만들며, 오직 인간만이 얼굴을 진실로 드러낸다. 얼굴로 나타나고, 드러내는 것들은 말로 표현하거나 하나의 명제로 공식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얼굴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옮기고 말보다는 얼굴로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낸다. 얼굴이 표현하는 바는 누군가의 고유한 마음의 상태일 뿐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개방성’과 의도적 노출 그리고 다른 이와의 소통이다. 이것이 얼굴이 정치의 장소인 이유다. (147쪽)


    박노해 시인도 최근 ‘이 끝은 어디에’라는 시를 통해 이런 논쟁에 불을 지폈다.


    권력이 뭐길래

    나한테 왜 이래

    질본이 뭐길래

    내 몸을 강제해

    확진이 뭐길래

    공포를 왜 질러

    마스크 왜 씌워

    백신을 왜 찔러 (‘이 끝은 어디에’ 시 일부)


    아감벤, 박노해 이런 사람들의 주장은 국가의 준강제적 방역이 개인의 삶을 지나치게 통제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하지만 마스크는 정치적 의미를 떠나 서구인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할만한 문화사적 배경이 있는데 아감벤은 이런 배경을 놓치고 있다. 일단 서구에서 사용되는 ‘마스크’라는 말은 우리 말로 하면 ‘탈’ 또는 ‘가면’이다. 하지만 한국어에서 방역을 위해 쓰는 마스크는 외래어로 굳어진 방역용 마스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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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남부의 라스코 벽화
     


    인류 최초의 마스크는 기원전 17000년 경으로 추정되는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발견된다. 벽화에서 새모양의 얼굴을 한 남자가 들소 사냥을 마친 후 쓰러져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바타이유는 쓰러진 남자가 발기되어 있다는 데 착안해서 에로티즘을 그의 철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삼았는데 남자의 얼굴이 왜 새 모양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바타이유는 에로티즘과 동물살해에 대한 죄책감을 연결시키는데 새모양의 마스크도 이런 죄책감과 연결지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탈’이 권력자에 대한 풍자를 담은 민중서사를 대표하고 있다면 그 밖의 세계에서 마스크는 죄책감, 자신을 숨기는 음험함, 죽은 자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있다. 중세에 페스트가 돌았을 때 페스트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치우러 나간 사람들이 마스크를 썼다. 이 마스크는 유난히 긴 코를 가진 마스크였는데 이 긴 코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향초가 들어 있어서 시체의 냄새를 막았다. 따라서 마스크와 얼굴이 가진 정치적 함의는 방역용 마스크와 탈 가면으로서의 마스크를 구별할 수 없는 언어권에서나 나올법한 주장이다.


    종교개혁 이후 신교지역에서는 마스크가 구교의 전통이라고 배척되었으며,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된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이 실패로 귀결된 뒤 1850년 일련의 좌파 인사들이 꼭두각시 행진을 벌이다가 구속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부터 마스크는 일종의 진영논리와 함께 가게 된다.  


    그런데 아감벤은 이번 코로나 사태가 가져온 색다른 진영논리의 문제도 간과하고 있다. 예전같으면 ‘이런 류’의 음모론은 주로 우파에서 나왔는데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 논쟁은 진영에 관계없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우파들이 마스크에 반발한 데 비해 한국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이 마스크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박노해 시인을 비롯해, 많은 SNS팔로워를 가진 프랑스 거주 교민 목수정씨, 영화 평론가 최광희 씨 등 좌파로 분류될 수 있는 성향의 사람들이 마스크에 부정적이다. 지난 6월에 출판된 아감벤의 이 책도 인터넷 서점들의 판매지수가 상당히 높다는 점도 아감벤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 읽힌다.  


    대의정치에 모든 걸 맡겨 놨다가 정치적 주체가 된 트럼프 지지자들의 마스크 반대운동과 달리 한국에서는 황사 현상 등으로 개인의 보건을 개인이 책임진다는 생각이 시민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좌우를 넘어 마스크가 거부감없이 받아 들여진다. 미국에서는 생명정치를 할 수 있는 세력(트럼프 집권 당시)들이 방역정책에 반대했고 한국은 시민의 자발적인 마스크 사용이 익숙한 나라라는 점에서 미국, 한국 모두 생명정치와는 거리가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아감벤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의 발언이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인데 지나친 음모론이 아닌 이상 이 정도의 논의가 상호간의 비난없이 진행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가수 성시경도 “백신을 무조건 맞는 말잘듣는 국민이 되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란 말로 백신정책을 에둘러 비판했다.


    반면에 지젝은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강우성 옮김, 북하우스)에서 “얼굴을 들여다 보지 않음으로써만 타자의 심연에 접근하기 때문에”, “우리는 맨 얼굴이 아니라 마스크로 가린 얼굴에 더많은 인간성이 있다는 엄중한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며 집에 불이 났을 때 평상시처럼 위엄을 지키다가 죽으라는 말이냐며 아감벤을 힐난한다.


    코로나가 얄궂다. 좌파 메시아주의자로 함께 분류되던 아감벤과 지젝도 갈라 놓았다. 그런데 항상 도착적, 도발적 사고를 하던 지젝이 코로나 시국에서 고분고분해진 건 의외이기는 하다


    김기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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