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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⒃] 구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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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큐메니안| 작성일2021-05-11 | 조회조회수 : 3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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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구원(救援)은 ‘건질 구’(건지다, 돕다, 고치다, 치료하다, 막다, 금지하다 등의 뜻)와 ‘당길 원’(당기다, 잡다, 취하다는 뜻)으로 구성된 단어로서, ‘위험이나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잡아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 철학 이전 시대, 구원은 ‘부, 명예, 권력, 건강, 장수’ 등을 의미했고, ‘행복’(그리스어로 eudaimonia)과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기원전 469?-기원전 370?)는 개인적 구원을 인간의 영적인 태도에 근거한 것으로 보았습니다만, 정치적이고 법적인 의미의 구원(그리스어로는 soteria, 라틴어는 salus)도 있었습니다. 플라톤은 구원을 국가 안에서 법이 타당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리스의 지배자 숭배에서는 제국의 구원과 동일시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시대 이후 구원은 가정과 국가의 질서와 번영으로(키케로), 17세기, 18세기 이후에는 국가적 목적으로서의 보편적 행복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종교마다 구원 이해도 다릅니다. 부족 종교는 구원을 행복론적으로 이해하고, 그리스의 신비주의 종교전통은 신비한 합일, 유교나 도교는 성인이 되는 것, 옛 이집트 종교나 로마의 황제숭배, 일본의 신도 등은 지배 권력의 안정을 구원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른바 소승불교(Hinayana)는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을 구원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이슬람은 살아서 파라디스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으로 봅니다. 유대인들은 출애굽 경험과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의식에서 구원을 노예적 삶으로부터의 해방, 하나님의 정의로운 지배가 관철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인도 게르만어(kailo)에 어원을 두고 있는 구원(고틱어로 hails)은 ‘총체적인, 온전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빈번히 등장하는 구원이라는 단어(그리스어로 soteria)는 ‘성취되고 행복한 영원한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파멸과 죽음에 의해서 극복될 세계에 하나님과의 끊어질 수 없는 사귐 속에 있는 생명이 선물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성경은 물질적인 구원을 말하고, 신약성경은 영적이고 내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다고 분리하여 이해하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구원의 원형은 출애굽과 갈대바다에서의 이스라엘의 승리, 그리고 땅의 분배에 있습니다. 포로기 이후의 문헌들에는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구원경험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묵시문학 시대에는 구원이 우주적이고 매우 강력하게 미래적이면서 초월적인 차원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운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예수라는 이름은 야훼께서 속량하신다는 의미). 구원이라는 단어 외에도 하나님의 나라(공관복음서), 생명(요한복음), 정의, 자유, 화해(사도 바울)라는 단어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창조세계를 다시 받아들이고, 모든 악마적 세력으로부터 그의 피조물을 해방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지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됩니다. 구원은 병과 적과 죽음의 파도로부터의 구출로 경험됩니다. 특히 예수님의 치유이야기, 몸의 부활 사건은 구원을 단지 영적인 사건으로만 축소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이미’와 ‘아직 아니’ 사이의 긴장관계 속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세례와 성만찬이 구원경험의 일차적 장소가 됩니다. 그리고 종말론적 미래에 성취될 인간과 모든 피조세계의 온전한 구원에 대한 희망도 교회 안에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구원은 서로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이해되어 왔습니다. 고대 교회에서 중세교회까지 구원은 보편적, 우주적 속량,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종교개혁시기에는 구원을 위한 인간 편에서의 노력을 배제하고, 오직 믿음이 강조되었습니다. 인간은 죄인이자 동시에 의인이었습니다. 밖에서부터 주어지는 주님의 말씀,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구원은 개인화되었고, 특히 ‘두 왕국론’은 구원의 정치적, 사회적 측면을 뒷전으로 밀려나게 했습니다.


계몽주의도 구원의 내재적 실현에 관심을 가졌는데, 20세기에 들어 구원 개념에 화해의 의미가 부각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도록 선택되었다는 것입니다(칼 바르트). 비슷한 구원의 낙관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총체성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을, 여성신학은 구원의 총체성과 경험관련성을 강조했습니다.


시대마다, 종교마다 구원에 대한 이해와 강조점이 다르지만, 사실 모든 종교, 인간의 궁극적 관심은 구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해탈과 초월, 해방과 자유, 행복, 공의와 정의, 어떻게 불리든지, 인간은 구원받기를 원하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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