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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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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큐메니안| 작성일2021-02-08 | 조회조회수 : 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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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로마서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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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d, the Holy Spirit ⓒMinnesota Evangelical Lutheran Church


올해는 코로나19가 잘 극복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극복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실한 답변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믿음의 발걸음은 계속될 것입니다. The show must go on.(SMGO)


올해 우리 목회 표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입니다. 그리고 성경 구절은 오늘 읽은 로마서 8장 1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시작해서 로마서 8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수 주간에 걸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정체성의 문제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정체성이 든든한 사람은 상황이 바뀌더라도 자신의 삶에 있어서 일관성을 지켜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이 흔들려 있으면 우리는 일관성의 결여로 인하여 이랬다저랬다 하는 삶을 살아가기 쉽습니다. 자녀 교육에서도 분명한 정체성 교육은 매우 중요하면서 근본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치관이 혼재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정체성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글로벌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단순히 한국 사람으로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지구촌화된 요즘의 세상에서 오직 한국 사람으로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종교, 다원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문화 혹은 종교에 절대성을 주장할 수 없는 다원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위기는 우리에게 심각한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지탱했던 여러 가지 가치관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야 하는 요즘의 시대에 우리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저는 정체성의 형성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기본적인 자세를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Global Identity(지구촌적 정체성)입니다. 한 가지 좁은 세계관에만 매달리지 말고 다양한 문화와 세계를 바라보면서 다양성 안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Spiritual Identity(영적 정체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요소가 갖추어져야 일관성 있는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두 번째 요소인 영적 정체성은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한국사람, 미국 사람, 중국사람, 일본사람 아니 그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하다면 우리의 삶은 어디에서 살아가더라고 일관성 있는 진지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사람으로 그리고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일 년 동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영적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해서 다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평생을 통하여 이루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울은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 년 동안의 설교를 통하여 영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여러분들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일 년 동안의 설교 계획을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진정한 기독교적 영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2) 예수님의 영성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적 영성의 내용에 대하여(복음서를 중심으로)

3) 성서 인물의 영성을 중심으로 하는 영성의 내용(신구약의 인물을 중심으로)

4) 오늘의 시대에서 바람직한 영성의 모습(성 프랜시스의 영성을 중심으로)


이를 위해 저는 먼저 로마서 8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약 8-10번에 걸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의 첫 출발인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의 첫 번째 설교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삶, 다시 말하면 성령으로 사는 삶은 무엇이겠습니까?


성령의 인도 받기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삶은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의 태어남도 성령의 인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예수를 잉태케 하였고 그 영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예수님의 가족은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를 지난 후 하나님의 영의 인도로 말미암아 다시 나사렛 지방으로 귀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로 그의 어린 시절을 나사렛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셔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세상을 향한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셔서 40일 동안 시험을 받으시기도 했습니다. 그뿐 입니까?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성령의 인도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예수님의 일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서 사신 삶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뿐만이 아닙니다. 기독 교회사의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 하나님과 역사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이끌려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계획대로 아시아를 향하여 복음을 전파하려 했으나 성령이 가지 못하게 하여 그만 그의 전도의 길이 유럽 쪽으로 향하게 되었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로마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로마를 빠져나오던 베드로에게 나타났던 예수의 영으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도망가던 길을 돌이켜서 다시 로마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고난 받는 성도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그는 정든 고향, 재산을 축적하고 기반을 이미 쌓아놓고 있었던 땅을 과감하게 떠납니다. 그것도 갈 곳을 알지 못하고 떠납니다. 그가 이러한 무모한 일을 행하게 된 것은 오직 ‘주의 인도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삶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의 삶을 하나님에게 맡겼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일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하여 이끌림을 받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된 믿는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수립’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현실’과 또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열리는 미래에 대한 참여’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기운으로 살아가기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삶의 양식이라고 말합니다. life style, 혹은 modus vivendi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life style은 시대와 지역 그리고 인종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를 보입니다.


그것은 삶의 양식이 그 당신의 시대적 정신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고 들은 상업 광고에서 가장 천박한 내용의 광고로 기억되는 것이 있습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된 신용카드를 선전하는 내용으로 “부우~자 되세요.” 하는 광고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광고 이후에 한국사회에서 일었던 “부우~자 되세요.”의 인사는 한국사회가 얼마나 ‘부자 된다’는 정신에 의해서 삶의 양식이 결정되고 있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현재 한국사회의 삶의 양식을 결정짓는 정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우~자 되세요.’라는 광고문 안에서 나타나는 물질 중심의 자본주의적 정신입니다. 물질의 과다에 따라 성공 여부와 사람의 인격이 결정되는 정신이 오늘 우리들의 삶의 양식을 결정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혹은 한 사회가 어떤 정신에 의해서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정신의 내용은 한 사람 혹은 한 사회의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결정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유럽국가의 살아가는 모습이 상당히 다른 것은 이러한 기본적인 정신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실용주의적인 미국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평등한 사회정신이 강한 유럽 국가들이 국가 경영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질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미국교회와 좀 더 본질적인 신앙의 의미를 추구하는 유럽 교회들이 서로 다른 신앙 양태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정신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삶의 양식을 결정 짓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정신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은 다름 아닌 경제입니다. 돈입니다. 코로나의 극심한 위험 속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람의 생명이 아니었습니다.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걱정이 우리 모두를 사로잡았습니다. 이 와중에서도 경제 성장율이 이렇고 저렇고에 관심을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경제 성장은 우리 모두의 삶을 규정짓고 있는 절대적 가치관처럼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가 잘되면 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사실은 가치관의 타락과 도덕의 몰락에서 오는 것임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경제나 혹은 군사력이 아니라 바로 도덕과 가치관의 타락(신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여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능력이 아니라 도덕과 가치관의 회복(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신학을 전공하고 목회를 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사회가 염려스러운 것은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도덕과 가치관의 땅에 떨어짐입니다. 오늘 우리를 지배하는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염려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 양식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 양태는 어떤 정신에 의해 지배되는 것 같습니까? 과연 하나님의 영의 기운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일반으로 시대정신, 물질적이고 자본주의적이며 실용주의적인 시대정신의 기운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합법과 불법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는 일이 합법적이냐 그렇지 않으냐 혹은 절차상 하자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문제는 어떤 정신으로 하고 있느냐 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합법적이고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의 기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합법적이냐 혹은 정당하냐가 인정을 받는 기본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기운으로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 기준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사람들의 기준에 의하면 전혀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합법 혹은 절차상 정담함의 기준에서 보면 낙제점을 면키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평생의 사역을 다른 어떤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기운을 힘입어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형태, life style은 당시 유대 사회의 시대적 정신인 legalism, 율법주의의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영의 기운이 ‘사람 사랑’에 의해 life style이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삶은 온통 성령의 기운에 의해 움직여졌습니다. 어떤 기운에 의해 움직여지느냐는 바로 우리 공동체의 사역의 양태를 결정지어 주는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와 나의 삶에 바람은 어떤 바람입니까? 주님의 영의 기운입니까?  금년 한 해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고’합니다. 이것은 바로 지금까지 우리가 의지하고 살아왔던 혼탁한 기운을 몰아내고 이제 새로운 성령의 기운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삶의 양식, life style을 바꾸겠다는 노력입니다.


예전에 송대관이 부른 “유행가”라는 제목의 유행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유행가 노래 가사는 사랑과 이별 눈물이구나. 음정 박자 따로 지만 넘치는 감정으로 부르는 노래”


유행가 부를 때 조금 음정 틀리면 어떻습니까? 박자도 좀 안 맞으면 어떻습니까? 유행가는 감정으로 부르는 것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갑니까? 교리를 조금 모르면 어떻습니까? 교회 생활에 조금 덜 익숙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그것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성령으로 살아가는 갑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홍인식 목사(더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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