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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도 목사는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어떤 설교를 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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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당당뉴스| 작성일2020-10-21 | 조회조회수 : 6,6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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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가 잠든 사이 드리는 애탐의 기도, 이 땅에 사랑의 생명을 낳는다



    *아래 내용은 『이용도 목사 전집 4 – 설교와 성경』(주의 것, 2020)의 편집자인 필자가 직접 책의 내용 일부를 간추려 뽑은 것임을 밝힙니다.



    이용도 목사는 설교를 직접 기록하여 남기지 않았다. 현재 ‘이용도의 설교’라고 불리는 글들은 당시 설교를 듣던 이들이 현장에서, 때로는 집으로 돌아가서, 적어 놓은 문장 또는 문단의 어록들이다. ‘혼자만 들을 수 없다’, ‘적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충동이 이용도의 설교 일부를 오늘에까지 보존, 전달해준 모태의 힘이었던 것이다. 고로 이용도의 현존 설교 필기에는 그 필기자들의 땀과 눈물도 담겨 있다.


    이용도의 설교 “겟세마네 동산”은 1937년 변종호가 출간한, 『서간, 시가, 그의 생애』에 등장하는 세 편의 설교 필기 가운데 하나다. 심우(深友)라는 아호를 쓰는 인물이 이 필기를 제공했다. 그는 평양 산정현교회와 장대현교회에서 들었던 이용도의 설교 일부를 종이에 옮겼고, 변종호를 통해 이것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1930년대 초 평양의 장로교계와 이용도 목사의 관계 일면은, 1931년 1월 23일 평양의 김예진이 이용도에게 보낸 아래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지난 추기 부흥회에도 이 목사님을 모시려고 했으나 뜻대로 안 되고, 또 지난번 산정현교회에서도 심히 원하였사오나 주님의 뜻이 아니신지 우리가 은혜받을 그릇이 못 되어서인지 결국 모셔오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목사님을 한번 뵈옵게 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중이오며 우리 밖에도 평양 각 교회에서 이 목사님과 같이 은혜받게 되기를 갈망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용도를 “심히” 원하던 산정현교회는 1931년 2월 15일 이용도의 설교를 듣는 데 성공(?)한다. 12월에는 23일부터 28일까지 아예 부흥회 인도를 맡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사전에 약속된 것이 아니라, 명촌교회 집회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이용도를 강권적으로 붙잡아 세운 것이었다고 한다. 이용도와 동행했던 변종호는 당시 “산정현교회의 직원과 신도가 모두 한 덩이가 되어 열렬히 간청”하였다고 기록했다.


    본 설교 “겟세마네 동산”은 산정현교회에서 선포된 설교라는 점은 확인되나, 그 연월은 확정하기 어렵다. 심우는 장소만 알려줄 뿐, 연월은 알려주지 않았다.


    설교에서 이용도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한참 이야기한 뒤, 그 겟세마네 동산이 실은, ‘우리가 자란 이 강산’이라고 한다. 겟세마네에서 흘리셨던 주님의 피는 지금도 흐르고 있는데, ‘우리의 겟세마네’인 이 땅 이 강산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다고 한다. 그 겟세마네는 우리의 피땀을 초청한다. 와서 교회를 위하여, 강산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부르고 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에 들어갔더니, 우리의 겟세마네가 걸어 나온 것이다. 일제강점기. 침략당한 우리 강산은 실은 보통 강산, 아니었던 것이다.


    아래는 심우가 남겨준, 그의 땀과 눈물이 스며 있는, 이용도의 설교 필기다. 그는 먼저 당시 산정현교회의 현장 분위기를 간략하게 묘사한 뒤 설교 내용을 전해준다.


    * * *


    (이때에 회중인 수 초만원으로 당내가 차고도 남아 나는 겨우 바깥 담 위에 앉아서 들었다. 회중은 겹겹이 앉아 그 광경은 실로 주를 따라 벳새대 뜰로 몰리어 생명의 말씀을 들으려 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였다.)



    예루살렘성. 


    복잡한 거리에서 사욕을 위하여

    눈이 벌게서 헤매던 모든 사람이 잠들고,

    하나님을 공경하노라

    모세의 율법을 저 혼자 아노라는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발걸음조차 끊기고,

    황금의 노예가 되어 웃음을 팔던 무리도 다-

    화려한 저택(邸宅) 속에서 단꿈을 꾸는 때에,

    고요한 이 성을 뒤로 두고

    안타까운 가슴을 부둥켜안고

    감람산 깊은 골짜기로 향하는 장년 하나가 있었으니

    그는 우리에게 피땀을 흘려주실 예수님이었습니다.

      

    깊고 깊은 감람산 험한 길을

    외로이 쓸쓸히 걷는 주의 걸음은

    참으로 고적한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전날 밤이었습니다.

    성만찬도 끝난지라,

    사랑하는 제자들도 거진 다- 가고

    겨우 2, 3인이 남아 있다가 끄덕끄덕 졸며

    피곤한 다리로 뒤를 따를 뿐입니다.


    병을 고쳐주고

    복을 빌어주고

    떡을 먹여주고

    다시 살림을 받았다-

    하여 왁왁 따라다니던 그 많은 무리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고,

    쓸쓸히 걸어가는 그 뒷모양(!!)을 보는 이는

    누구나 비장(悲壯)을 느끼지 아니치 못할 것입니다.


    인간세상을 내려다보시고 가슴이 아프신 주님은

    이 무리를 위하여 아버지를 부르짖지 않을 수 없어

    겟세마네 골짝, 가시가 무성한 그곳에를

    혼자 가서 엎드려 피땀을 쏟으시며 기도하신 것이올시다.

    주님께서 이런 고생을 하신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신 것이 아니올시다.

    오직 여기 앉으신 형제자매님들을 위하여 그러신 것이올시다.

    이 참경(慘景)을 상상할 수 있는 우리는

    주님의 애타시는 가슴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주님의 가슴을 조금이라도

    시원케 해드리도록 힘써야겠습니다.


    2000년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흐르던 그 피땀이

    지금도 이 강산에 흐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다-

    같이 겟세마네로 달려가

    주님 앞에 엎드려

    통곡하여야 마땅할 것이올시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이 강산을 위하여,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여야겠습니다.

    피땀을 흘리는 기도가 있는 곳에야

    생명이 있습니다.


    또 이 세상은 악하여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무리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試驗)에 들지 않기 위하여

    힘써 기도하여야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행적을 한 편의 사기(史記)로만 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땀이 우리에게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알아야겠습니다.

    이 강산에서 자란 우리는 이 강산을 겟세마네로 삼고

    피땀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함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의 겟세마네는 우리의 피땀을 부르고 있나니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같이하여 겟세마네 동산,

    주님 계신 성산(聖山)으로 나가십시다.


     

    겟세마네 동산까지

    주와 함께 가려 하네

    피땀 흘린 동산까지

    주의 뒤를 따라가려네


     

    『이용도 목사 전집 4 – 설교와 성경』(주의 것, 2020), 124~12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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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헌  |  yesupeo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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