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사 49:1-7; 엡 3:1-13; 요 1:29-34) > 성경공부 | KCM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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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사 49:1-7; 엡 3:1-13; 요 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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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성탄절 둘째 주일(1월3일) 새해주일



    1. 신축년 새해, 벧세메스로 가는 흰 옷 입은 소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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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들었쥐? 힘내소!


    다사다난했던 2020년 경자년 황금 쥐띠의 해가 저물고 2021년 신축년(辛丑年) 하얀 소의 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었으니, 코로나의 위기와 또한 경제위기를 잘 극복하여 일상을 회복하고, 동시에 사람들의 가치관도 좀 더 생태중심적으로 바뀌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기후위기와 핵발전소의 위험을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인간의 탐욕과 교만에서 벗어나 자연과 동식물과 더불어 함께 공생하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합니다.


    올해 2021년 신축년이 하얀 소띠 해라, 저는 신약과 구약의 두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먼저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로, 어린 양의 피로 옷을 씻어 희게 된 자(계 7:9-14)”가 나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구원받은 ‘흰 옷 입은 무리’를 말합니다. 이단들은 144천명이라 말하지만, 말씀의 본 뜻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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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벧세메스로 가는 소


    또한 구약 말씀을 통해서는 사무엘상 6장에 나오는, 블레셋에서 이스라엘 벧세메스로 법궤를 싣고 가는 젖 나는 암소 두 마리가 생각이 납니다(삼상 6:1-16).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이겨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이 하나님의 징계로 독종 재앙이 점점 심해지자 빼앗은 법궤를 소 두 마리가 끄는 수레에 실어 이스라엘로 보냅니다. 이 암소 두 마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곧장 이스라엘 땅으로 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명을 감당한 후에는 번제로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코로나-19의 위기, 경제 위기, 부동산의 위기는 물론 기후 위기와 또한 핵발전소의 위기가 2021년, 우리가 벧세메스로 가는 길에 놓여져 있습니다. 게다가 법치가 무너지고 선악의 기준이 불분명한 이때, 곧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때,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큰 환란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룩하게 되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마침내 사명을 감당하는 벧세메스로 가는 흰 옷 입은 암소 두 마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주 성탄절 첫째주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그것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기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주 복음서 말씀에 나오는, 시므온을 통해 예비 된 아기 예수님의 삶은 혹독한 시련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이것은 구약 말씀인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질서, 곧 하늘의 질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이들에게는 늘 고난과 핍박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리가 이깁니다. 반드시 승리합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처럼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성탄절 둘째주일을 맞아, 우리는 이렇게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않고,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와 같이 세상의 모든 질고와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길, 곧 환난과 고통의 길은 예정된 길이며 바로 하나님의 아들 됨의 길이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세례 요한이 그것을 잘 증거 합니다. 구약의 말씀과 서신서의 말씀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택하심 가운데 있는 일이며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따라서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길의 결국은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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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2.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요 1:29-31)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세례가 자기보다 뒤에 오지만, 자신보다 앞선 분이신 예수님을 예비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비둘기 같이 임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요 1:32-34)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 세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미리 예정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말씀이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오늘 구약 본문 이사야 말씀, 마지막 절부터 볼까요?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사 49:7)


    놀라운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 이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분, 곧 요한보다 먼저 계신 예수님의 성령 세례가 어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나요? 멸시받고 미움을 당하고 종, 곧 노예가 된 자를 택하심으로 모든 왕들이 그를 경배하는 자가 된다는 말씀이죠? 이것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먼저 아기 예수께서 왕이 되신다는 말이기도 하고 또한 성령 세례를 받은 이들도 왕좌에 앉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혁명도 이런 혁명이 없습니다. 지난주 말씀에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언했던 시므온의 말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시므온의 예언을 다시 살펴볼까요? 누가복음 2장 34절입니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2:34-35)


    놀라운 예언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 성탄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기 예수께서 오심으로 패하거나 망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사야 본문에 의하면, 왕들과 고관들이 그들이 부리는 종과 노예들에게, 일어나서 경배한다고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권세 있는 왕과 고관들의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을 비방할까요? 바로 칼로 우리의 마음을 도려내듯이 우리 마음속의 더럽고 추한 생각들을 예수님께서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민낯을 예수님께서 끄집어내신다는 것입니다.


    3. 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설교 말씀 제목으로 인용한, ‘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창비 주간 논평 백낙청 신년칼럼, 2020.12.31)’라는 글에서 백낙청 교수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추한 민낯을 적확하게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민낯은 무엇인가요? 백낙청 교수는 크게 6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수구야당과 검찰, 사법부, 그리고 경제 관료들과 언론계,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 구조의 일부로 역할을 하고 있는 집권 여당입니다. 먼저 ‘국민의 힘’ 당의 민낯을 볼까요? 백낙청 교수의 말입니다.


    “촛불혁명으로 가장 일찍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 거대 수구정당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야말로 가장 크게 변한 집단이다. 국민을 속여서 집권하는 게 목적이었고 2007년과 2012년 모두 그 목적을 너끈히 달성했던 정당이 촛불 이후 국민을 속이는 능력뿐 아니라, 속이려는 성의마저 상실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한마디로 후안무치(厚顔無恥, 얼굴이 두꺼워서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인면수심(人面獸心, 중국의 한족(漢族)들이 흉노족을 멸시하며 쓰던 말이나, 나중에는 성질이 잔인하고 흉악한 짐승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됨)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아닙니다. 바로 검찰과 사법부죠? 백낙청 교수는 그들의 민낯을 이렇게 드러냅니다.


    “검찰의 민낯도 온 천하에 드러났다.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음을 아는 이들은 전부터 꾸준히 늘어왔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개혁을 추진한 대통령과 정부도 잘 몰랐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윤석열 총장이 이끈 대대적 반항사태를 지켜보면서 철저한 검찰개혁이 수구정당 제압에 못지않은 시대적 과제임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검찰개혁의 당위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사법부의 개혁 또한 필요했습니다. 사법부와 검찰, 곧 법 기술자들이 사법 권력과 법률지식을 동원하여 법을 교란하고 있습니다. 백낙청 교수의 말입니다.


    “검찰처럼 직접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 뿐이지, 국민을 죽이고 살리는 최종적 권한을 가진 법관들의 정체도 드디어 국민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 동네야말로 설마가 사람 죽이는 곳인데, 사실 ‘설마’는 배부른 계층들 얘기이고 돈 없고 힘없는 백성들은 일찍부터 그곳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본고장임을 실감해왔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민낯이 다 드러났나요? 아닙니다. 언론과 경제 관료가 남아있습니다. 물론 우리 언론의 모습은 이미 ‘기레기’라는 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정직한 보도를 하지 않죠? 아시다시피, 언론은 실상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습니다(대표적인 것이 세월호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언론의 민낯을 깨닫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언론계의 문제는 일부 기자들의 타락, 또는 조,중,동과 같은 특정 언론사들의 진실 왜곡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바로 재벌과 기업의 광고 때문입니다. 진실과 사실보다는 광고주의 돈에 휘둘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언론의 민낯입니다. 백낙청 교수는 그것을 잘 지적합니다.


    “이제는 저들의 왜곡보도가 단순한 사실 왜곡의 수준을 넘어 촛불정부의 실패를 위한 면밀한 작전의 일환이며 그런 점에서 제 1야당보다 대형 수구언론이 반촛불세력의 전략본부로 기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소위 진보신문이 이에 효과적인 대응을 못 하는 것이 단지 물적 자원의 부족과 발행부수의 열세 탓이 아니라, 손쉬운 양비론에 안주하면서 포털의 클릭 수에 누구 못지않게 집착하는 자세에 기인하기에 이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 배경에는 정권보다 금권이 우위에 선 지 오래된 우리 사회에서 언론인 집단 자체의 체질에 일어난 변화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경제 관료들은 어떨까요? 예산권을 틀어쥔 경제 관료들의 실상도 지금 잘 드러나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매우 양호한 편인데도, 기획재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거의 사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자고 할 때마다 ‘재정건전성’을 들고 나와서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했습니다. 백낙청 교수는 그들의 민낯도 이렇게 들춰냅니다.


    “케이(K)방역이 진단과 추적에서 모범적인 성과를 내면서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는 데 한계를 보이는 것도, 정부 관료가 서민을 ‘죽게 내버려두는’ 속마음으로 재난 극복에 임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신을 사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남은 여당의 민낯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180석을 동원할 수 있는 더불어 민주당의 민낯을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백낙청 교수는 이렇게 그들의 민낯도 발가벗깁니다.


    “의석 180석을 동원할 수 있는 지금도, 툭하면 말을 뒤집고 개혁에 발을 끄는 모습은 결코 대충 넘길 일이 아니다. 대통령 자신은 여전히 촛불정부의 초심을 잃지 않았다고 믿기에, 나는 계속 지지를 보내는 축이지만, 촛불혁명의 개념조차 희박한 고위관료와 여권 정치인들을 제대로 통어(統御, 거느리어 제어)하지 못하는 책임마저 불문에 부칠 수는 없다. 이는 정치적 개인기의 문제라기보다 촛불시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그들의 선한 기운을 북돋우는 노력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습니다. 선한 기운을 북돋우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기운을 북돋울 때, 누룩처럼 번져나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듯 아기 예수님을 통해 도래할 메시아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메시아를 사모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메시아가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4.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구원을 베풀리라!


    사실 오늘 구약 본문인 이사야 49장부터 57장까지는 장차 도래하실 메시아에 관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49-53장까지는 메시아가 겪게 될 모진 고난을 담담히 받아들이시는 메시아의 거룩한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복음서 말씀에 나오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모습입니다(사 53:7). 이것은 새로운 세상, 곧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모진 고난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태에서부터 부르셨기에, 갈고 닦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사 49:1-3)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예수님의 제자들로 말미암아 도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태에서부터 우리를 당신의 종으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힘이 아니라,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우리의 수고가 헛되고 무익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얘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오,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 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사 49:4-5)


    따라서 이제 우리의 힘이 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추악한 세상의 민낯을 발가벗기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때는 야곱의 지파들이 일어날 것이며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7)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방 세계와 이방인 구원의 문이 이렇게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서신서 본문인 에베소서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고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데 있어 고난 받고 환난을 당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권면을 들어 볼까요?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엡 3:13)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매우 중요한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에베소서는 ‘교회론’에 관한 서신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유기적 공동체로서 교회의 본질에 관해 소개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성도들 간의 온전한 일치와 연합을 중요시하고 있죠? 그리고 그 연합, 곧 유기적 공동체로서 교회의 본질에 관해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교회의 비밀에 관해 소개합니다. 즉 교회를 통해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공동번역은 권세의 천사들과 세력의 천신들로 번역)’, 곧 천사들에게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엡 3:10)” 무슨 말씀인가요? 불의한 세상의 민낯을 드러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교회의 사명을 당부하기 위해 바울은 먼저 자신의 간증부터 말하기 시작합니다.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 여러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포로가 된 나 바울로는 하느님께 기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은총을 베풀어 여러분의 일꾼으로 삼으신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심오한 계획을 나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앞서 간단히 적은 바 있으므로 그것을 읽으면 여러분은 내가 그리스도에 관한 심오한 계획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엡 3:1-4)


    바울은 자기 자신이,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혔다고 말합니다. 공동번역은 예수의 포로가 되었다고 말하죠? 따라서 하나님의 심오한 계획인 ‘그리스도의 비밀’을 이야기 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일치되어 교회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찬가지로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지금은 하느님께서 성령의 힘을 빌려 그 심오한 계획을 당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지만 전에는 지금처럼 인간에게 알려주시지 않았었습니다. 그 심오한 계획이란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엡 1:5-6)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상속자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러한 복음을 위해 사도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엡 3:7) 그렇습니다. 불법 아래에 있다고 생각되어진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상속자가 되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5. 거울 들여다보기


    자, 다시 백낙청 교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이렇게 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백낙청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관성적인 개탄’이나 ‘옥석을 안 가리는 과격한 공격’이 아니라, 촛불을 표준삼은 ‘냉정한 형세판단’과 ‘착실한 제도개혁’이 필요하다고 전제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울 들여다보기’입니다. 모두가 먼저 거울을 들여다보자는 것입니다. 비판하는 당신 자신의 민낯을 먼저 보라는 것입니다. 백낙청 교수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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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 들여다보기


    “이런저런 민낯들을 보면서 우리가 반드시 할 일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추론해도 세상이 온통 ‘이런데’ 자신만 온전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각자가 스스로 해온 몫이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한민국을 ‘기후악당국가’로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기여한 바 있을 것이고, 노동을 멸시하고 생명을 경시하며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에서 무심코 살아왔다면 그것도 반성하고 참회할 대목이다. 나는 분단체제가 괴물이라면 그 속에서 살아온 우리 내부에도 괴물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라는 주장을 펴왔는데, 분단체제를 포괄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괴물스러움 또한 팬데믹 시대를 맞아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2021년 새 해가 밝았습니다. 촛불혁명의 승리에 도취되어, 우리는 잊고 있었지만, 촛불로 말미암아 자신의 기득권을 상실한 적폐세력들이 반성하지 않고 우리 곁에 함께 있었습니다. 아니, 우리 자신이 적폐 세력은 아닌가요? 도긴개긴입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입니다.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성경 말씀에도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라고 합니다.


    따라서 백낙청 교수가 말한 6가지 우리 사회의 민낯을 가진 이들도 함께 가야할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공동체의 한 구성원입니다. 그들도 반성하고 회개하여 제대로 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기회를 주어야하기 때문입니다(마 18:21-22, 눅 17:3-4). 바울도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 3:8-11)


    그렇습니다, 세상의 민낯을 보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민낯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추한 민낯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구원하시는 곧, 만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늘 신년 첫째 주일을 맞아 조용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특히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지금 많은 위기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2021년 한해, 벧세메스로 가는 흰 옷 입은 소와 같이, 큰 환란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룩하게 되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마침내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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