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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29] 성서가 잊지 않은 위대한 2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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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 1 >


    헤롯이 유대 왕으로 통치하던 때, 나이 많은 제사장 사가랴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임신하지 못하는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을 예언하면서 한 천사의 말은 그 아이가 어떤 운명을 가질지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큰 인물이 될 것이다. …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앞서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서게 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다”(눅 1,15-17).


    요한은 진실로 큰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보다 더 위대한 인물”(눅 7,26),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없다”(눅 7,28)고 극찬하셨습니다.


    아기 요한은 성장하여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서 살았습니다(눅 1,80). 그리고 마침내 백성 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는 금욕주의자(마태 3,4),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비난하고,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도록 촉구하면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푼 예언자(마태 3,7-8; 마가 1,4), 환생한 엘리야(막 9,13)였습니다.


    회개는 구체적이어야 했습니다.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세리들은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군인들은 아무에게도 협박하여 억지로 빼앗거나, 거짓 고소를 하여 빼앗거나, 속여서 빼앗지 말고, 봉급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눅 3,11-14).


    그렇습니다. 회개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마음의 뉘우침이 습관과 행동의 변화로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회개 촉구의 대상은 속옷 두벌과 먹을 것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 사람부터, 세리와 군인들, 제도적 권력과 폭력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빼앗는 집단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가진 것을 ‘나눌 것’을,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빼앗지 말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단지 마음의 뉘우침과 가진 것을 일부 나누는 것을 회개로 이해하고 선포했다면, 굳이 구속되고 자기 목을 분봉왕 헤로데 안티파스(AD 4-AD 29)의 잔치 상에 차려진 쟁반에 바쳐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구속되고 마침내 처형당하게 된 이유는-유대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100)에 따르면-요한의 심판 설교(눅 3,7-9)가 유다 민중을 선동했고, 추종자들이 점차 늘어나 폭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헤도데 안티파스가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한의 종말적 회개운동이 구체적으로 당시 현실문제에 개입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세리와 군인들의 횡포와 약탈을 지적하면서 회개를 촉구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눅 3,21: 백성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집권자인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위협으로 보였다는 것이지요.


    세례자 요한의 이런 선포에 놀란 백성들은 마음속으로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눅 3,15). 그러나 요한은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오”(눅 3,16)라며, 자신도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 아니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며, 험한 길을 평탄하게 하는 광야의 소리일 뿐이라고 규정합니다(눅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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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ttia Preti, 「St. John the Baptist Preaching」(1665) ⓒWikipedia


    < 2 >


    ‘영원한 2인자!’, 그것이 복음서가 본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성경은 한 편으로, 예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시고, 요한이 잡힌 후에 갈릴래아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으며(막 1,14), 요한처럼 회개를 촉구하고 세례를 베푸셨으며(요 3:22,26; 4:1-2),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처럼 예수님도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고(눅 11:1),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생한 요한이라고 생각할 정도로(눅 9,19) 두 인물의 친화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요한의 세례와 회개운동을 ‘율법과 예언의 시대’의 종결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과 함께 ‘새로운 은혜의 시대’가 열린 것으로 선언합니다.


    요한이 종말심판과 회개, 율법과 예언자 시대의 마지막 인물이었다면, 예수님은 은혜의 때, ‘질병과 고통과 악령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치유 받고’,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눅 7,21-22) 새로운 은혜의 시대를 연 그리스도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없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눅 7: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세례자 요한을 자신보다 못한 영원한 2인자로 격하시키려는 의도의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요한의 시대를 단절되어야 할 옛 시대로 평가절하하려는 숨은 뜻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을 모든 예언자들보다 더 한 자(마 11:9),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하신 것은 그가 옛 시대(율법과 예언자 시대)와 새로운 시대(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의 경계선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나갈 시대와 오고 있는 시대의 격동의 경계에서, 새 시대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과 함께 이미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고, 제자들은 미래에서부터 현재로 침입해오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는 ‘진노와 심판’이 아니라,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기 때문에’(눅 7:22), 비록 가장 작은 자라 할지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장 작은 자’, 눈 멀고, 다리 절고, 나병에 걸리고, 귀먹고, 죽은 사람, 가난한 사람은 지금도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인정받은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크게 인정받는 나라, 바로 그런 나라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나라입니다.


    < 3 >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한국의 재벌 기업 삼성의 그룹이미지 광고 카피였습니다. 달에 첫 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 1930-2012)은 기억하지만, 암스트롱보다 15분 뒤에 발을 디딘 에드윈 올드린(Edwin Buss Aldrin, 1930- )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남극 정복자 로알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은 기억하지만, 그보다 한 달 늦게 도착한 로버트 스콧트(Robert Falcon Scott, 1868-1912)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거나, 찰스 린드버그(Charles A. Lindbergh, 1902-1974)보다 2주 늦게 대서양을 횡단한 클라런스 챔벌린(Clarence D. Chamberlin, 1893-1976)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무한경쟁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경고라고도 하겠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등 지상주의’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2천 년 전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도 그런 논쟁이 있었습니다. 누가 더 위대한 예언자이냐를 두고 말이지요. 그리고 복음서, 특히 요한복음은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요 3,30)는 요한의 말을 인용하여, 요한을 영원한 2인자의 자리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세례를 베푼 요한을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한 예수님과 자기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고 자신을 낮추고, 자신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소리에 불과하다는 요한! 어찌 이 두 사람의 관계에 등급을 매길 수 있겠습니까? 율법의 시대에서 복음의 시대로 넘어가는 역사의 전환기에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모두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별은 그 빛을 자랑하지 않는다. 장미꽃이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듯이 꽃은 살아있지만 그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는다.”


    참으로 빛나는 것, 진실로 아름다운 것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빛나고 아름다운데 굳이 자신을 다른 것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2등이, 아니 소위 등수에도 못 들거나, 안 드는 사람들이 사는 법, 그것은 자신을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고, 굳이 자랑하지 않고도 스스로 빛나고,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에큐메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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