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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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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를 의지하라.”(예레미야 17:5-11)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도,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평안은 우리 안에 이미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의 선물을 날마다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치유’란 무엇일까요? 건강이 회복되면, 낫지 못할 병이 낫게 되면 우리는 치유되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성경은 치유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데요. 지난주 진정한 치유란 ‘믿음’으로 우리 자신과 삶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바라보고 경험하게 될 때 일어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병환자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이제 나에게 오지 않아도, 나에게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삶 전부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너의 믿음이 너 스스로를 치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 주간 은혜로 받은 이 ‘믿음’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신 적이 있으셨나요? 두렵게 만 느껴졌고, 고통스럽게 만 받아들였던 많은 관계와 일들이 다르게 보이시던가요? 다르게 경험되어 지던가요?


    사도 바울의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라는 고백처럼 두려움과 고통이 오히려 우리의 속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이 믿음의 신비를 날마다 체험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중에 읽은 시 한 편을 성도님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202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루이즈 글뤽이라는 여성 시인의 ‘눈풀꽃’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얼어붙은 겨울이라는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봄이 온다는 희망을 이야기한 시입니다. 시인은 여전히 세상은 살을 에는 바람처럼 힘겨울 수 있지만 이 바람에 눌리지 않고 ‘기쁨’을 바라보겠다고 선언합니다.


    시인은 청소년기에 극심한 거식증과 신경성 식욕부진을 앓았습니다. 이로 인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7년에 걸친 상담치료를 받아야 했는데요. 두 군데의 대학교도 다녔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학위를 받지 못했습니다.


    후일 시인은 인터뷰에서 이 절망적이고 우울했던 시기를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경험 중 하나"라고 회상했습니다. 고통의 경험을 창조적이고 위대한 경험으로 승화시킨 좋은 예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도 자신의 고통을 고통으로만 두지 않고, 위대한 경험으로 승화시킨 인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전해주시는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포된 말씀들로 인해 늘 위협과 핍박을 받으며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 고통이 너무나 컸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17:14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저를 고쳐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나을 것입니다. 저를 살려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살아날 것입니다.”


    사람마다 때가 다르고, 방법도 다르지만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습니다! 제발 좀 살려주세요!”


    꼭 엄청난 일과 고통스러운 일이 터져야 살려달라는 고백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동기가 되었든, 우리 내면에 살려달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버튼이 눌려지는 날이 온다는 말입니다.


    이런 날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 듯 짧은 순간에 우리의 마음을 충동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리고 이때가 되면 비로소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내려놓게 됩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게 되는 “살려주세요.” 고백하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일이 벌어지더라도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힘과 능력, 건강을 의지하거나 다른 무언가를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마음이 하나님과 함께 있지 않은 사람들의 삶은 방금 읽어드린 6절처럼 메마르고 황량한 삶을 살게 된다고 선포합니다. 눈으로 보이는 삶은 메마르거나 황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를 누리고, 남들이 부러워 할 만 한 삶을 살고, 몸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할 수도 있습니다. 메마르고 황량할 것이라는 말씀은 마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자의 일생』을 쓴 ‘기 드 모파상’이라는 프랑스의 작가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고,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인정도 받고, 부도 얻은 부러워할 만한 삶이죠? 그러나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서도 마음에 공허함을 메꿀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공허함을 메우고자 신학교도 다녔지만 중퇴했고, 마음에 공허함을 메울 길이 없어서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 여성을 사귀기도 하고, 결혼도 여러 차례 했지만 참된 만족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자살을 결심하지만, 실패하게 되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마흔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기 드 모파상의 묘비에는 말년에 쉴 새 없이 하던 말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저주’란 바로 이런 방황할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말씀이 아닐까요? 충족하기를 바라지만 충족할 수 없고, 만족하려 하지만 만족할 수 없는 마음의 어두움을 가진 삶이 저주가 아닐까요?


    예레미야는 반대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을 받게 된다는 선포입니다.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앞의 본문에서 말 한 황량함과는 다른 분위기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올 만 한 삶입니다. 그러나 이런 삶이 거저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믿음의 결과로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누릴 수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마음이 내 삶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떠났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정확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하나님을 떠난 마음은 부패하게 되고, 부패한 마음은 부패한 삶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패한 삶은 더러운 죄악을 저지르는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 되지 못한 삶 자체가 부패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자로 살아갈 것이냐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기 위한 첫 발걸음은 “살려주세요.”라는 외침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살려주세요!”가 아닙니다. “이젠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외침이 되어야 합니다. 이 외침을 통해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비우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복 된 삶을 살게 됩니다. 진정으로 치유되는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39:17-18에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습니다. “17 바로 그 날에 내가 너를 건져내어, 네가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18 오히려 내가 너를 반드시 구해서, 네가 칼에 죽지 않게 하겠다. 네가 나를 의지하였기 때문에, 내가 너의 생명을 너에게 상으로 준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는 핍박과 위협을 끊임없이 받았음에도 하나님의 대언자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열어놓았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인정하자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어떤 어려움과 두려움이 몰려와도 두려워만 하거나 걱정만하며 살지 않게 됩니다. 삶에 무언가가 채워져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내가 하나이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 됨이, 우리를 평안케 하고 위대한 경험을 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복된 삶을 놓치지 않으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에큐메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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