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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의 사후관 - 죽음과 죽음 이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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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26)]  





    < 1 >


    주제로 읽는 성경, ‘죽음과 죽음 이후’, 오늘은 사도 바울의 사후 세계관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예수님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로 꼽힙니다. 그것은 그가 이방인 선교를 통하여 그리스도교를 세계 종교가 되게 한 디딤돌 역할을 했고, 그리스도교 안에서 핵심적인 신학 이론이 발전하는데 중차대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산 사람에게나 죽은 사람에게나,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 악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 이르기까지, 환난과 고통을 주실 것이요, 선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롬 2,6-11)


    하나님의 심판은 죽음 이후로 유예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쏟으신다는 것이지요. 심판은 미래, 죽음 이후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적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동시에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증언합니다. 편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바울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뚜렷이 구분된 ‘3층’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거하시고, 이제는 부활한 예수님도 거하시는 ‘저 높은 곳’이 있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사는 땅, 즉 ‘이 아래’가 있고, 그 다음에는 죽은 자들이 거하는 ‘한참 아래’ 층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후 50년 경, 가장 먼저 쓴 편지로 알려진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예수님은 이 땅의 층에서 사시다가 죽어서 ‘저 아래로’ 내려가셨다가, ‘위로’, 즉 하나님이 계시는 층으로 들어 올려졌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다시 ‘아래로’, 저 한참 아래에 있는 자들, 곧 죽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셔서, 그들과 함께 ‘위로’ 들려 올라가실 터인데, 여기 가운데 층에 거하는 자들, 곧 그 때 이 땅 위에서 살아남아 있는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구름 위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이다(살전 4,13-18)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죽은 자들이 모두 이른바 ‘스올’, 그늘 진 곳에 다 함께 잠들어 있다는 유대의 전통적인 사후세계관을 계승하고 있습니다(살전 4,13-14).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과 살아 있는 신자들의 들려올려짐이라는 종말론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예수님의 종말론적 사후 세계관을 동시에 계승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2 >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는 조금 다르게 표현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이 죽으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간다”고 합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압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이 장막집에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장막을 벗을지라도, 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고후 5,1-3).


    바울은 우리가 죽으면, 곧 육체라는 장막을 벗으면, 죽음을 삼킨 생명을 덧입고, 하늘로부터 오는 영원한 집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집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바울도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육체라는 장막을 벗을지라도 하늘로부터 오는 영원한 집이 세상의 장막집을 덮을 것(고후 5,3-4)이라고 표현합니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진다는 것이지요(고후 5,4).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바울의 표현이 모호한 것은, 그의 관심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바울의 관심은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 있든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고후 5,9).


    그렇다고 바울이 심판을 안 믿은 것이 아닙니다(사진 6, 최후의 심판). 바울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하고,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한다”(고후 5,10)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그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고, 곧 역사의 종말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 곧 온다고 선포하셨던 하나님 나라가 금방 오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역사의 종말과 심판이 지체되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일부는 각자가 죽는 순간 곧바로 억울함을 설욕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곁으로 즉시 불려 올라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갑작스런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살전 5,3). 다시 말해 심판의 날에 완전히 소멸할 거라는 말이지요. ‘영원한 생명’과 ‘완전한 소멸’, 이것이 바울이 생각한 믿는 이들과 안 믿는 이들의 사후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예수님의 묵시론적 사후 세계관은 점차 흐릿해지고 지워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삶과 죽음을 더 이상 종말론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죽음 직후 이루어질 상과 벌에 거의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은 영원한 기쁨을 누리지만, 죄인들은 영원한 고문을 당할 거라는 개념이 확고해지면서, 마침내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바울 이후의 초대 교회에서 사후 세계관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에큐메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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