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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살아있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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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urrection of Lazarus」 ⓒWikipedia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이 말씀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아직 나사로가 살아 있었을 때 예수께 그가 병들었음을 알렸지만, 예수는 곧장 그리 가시지 않고 지체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무덤에 안치된 지 나흘이 지나서야 베다니에 오셨으니, 마르다와 마리아의 속은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하는 그들의 말 속에는 아쉬움과 원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시는 도중에 나사로의 죽음을 이미 알고 계셨고 그 죽음을 잠든 것으로 말씀하시며 깨우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지체는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예수를 기다리던 마르다와 마리아에 그 시간은 너무 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한데 마르다의 태도가 놀랍습니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예수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에 대한 신뢰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오라비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응답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마르다는 그 말이 마지막 날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예수께서는 오늘의 본문으로 대답하십니다. 그 이후의 보도가 없었다면, 이것은 마르다의 말을 확인하는 것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를 ‘깨우심’으로써 예수는 그의 말이 미래가 아니라 현재와 연관된 것임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는 부활과 생명으로 현재 마르다 앞에 또 우리 앞에 계십니다. 그렇기에 그는 마지막 날 부활의 시작입니다.


    이어서 예수와 부활과 생명의 관계가 조금더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우리를 부활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예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죽음을 이기고 살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뒷부분은 조심스레 읽어야 합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이해되는지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영원히 죽은 상태로 있지는 않다는 것인가요?


    후자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죽음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지만,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죽음에 끝이 있고 부활과 함께 생명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죽음의 시간이 얼마가 될 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은 제한된 시간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로가 잔다고 하신 것도 이에 비춰 이해될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서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무엇인지요? 앞부분에는 없는 ‘살아서’라는 말이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면, 왜 거기 있는 것일까요? ‘살아있는 동안’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의미는 조금더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믿음은 한 때의 또는 일시적 과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곧 평생의 과제입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는 믿음이 그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그 말의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삶에서 드러나는 오늘이기를. 우리의 믿음이 죽음을 이기고 생명으로 향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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