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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의 형통함(창세기 39: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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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erbrand van den Eeckhout, 「Joseph in prison」 ⓒWikipedia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저는 어지간해서 성경에 나타난 인물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성경, 특히 구약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유명한 인물들도 꼼꼼히 따져보면 본받지 말아야 할 모습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처럼’, ‘솔로몬처럼’ 이런 식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구약성경에서 우리가 본받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을 꼽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돌이키고 있는 시기에 요셉에 관한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서 요셉의 안타까운 삶을 알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질투로 인해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었고, 이집트 파라오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들어가게 됩니다. 창세기 39장 2-3절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에 요셉이 범사에 형통하였고, 이를 본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노예로 팔려온 요셉의 안타까운 삶이 해결되는가 싶은 순간에 요셉에게는 새로운 시련이 닥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다가 실패한 후,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갇히도록 만듭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감옥에 갇힌 요셉과 함께 하셨기에 간수장까지 은혜를 받게 되었고, 간수장은 옥의 모든 죄수와 제반 사무를 요셉에게 맡겼다고 말합니다. 그 뒤에 나타나는 오늘 본문 23절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에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우리는 훗날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형통하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입니다. 결과가 좋으면 됐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예전에 어려웠던 시절에는 좋은 결과만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은 그런 시대상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어려움과 힘듦, 아픔은 참고 견디고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이런 시기를 겪으셨던 세대가 있기에 우리는 지금의 좋은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과정의 고통과 아픔을 견디고 이겨내라는 말보다는 모든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고 이를 원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요셉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삶의 과정이 고통의 연속, 좌절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형들에 의해 상인들에게 팔렸던 순간 요셉은 아버지가 구해주길 희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디발의 집에 팔리면서 그 희망은 좌절됩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열심히 일하며 자신의 입지가 높아졌을 때, 더 입지를 단단히 다진다면 가나안 땅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고 희망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 좌절됩니다. 그리고 결국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됩니다.


    창세기 40장에서 감옥에 갇힌 관원들의 꿈을 해석해주는 장면 뒤에 요셉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창세기 40장 13-15절을 보면, 요셉은 술 맡은 관원이 복직될 것을 해몽해준 뒤, 파라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모습만 봐도 요셉이 어떤 심정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39-40장에 나타나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형통’하다는 말을 붙일 수 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셉의 삶은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언제나 억울하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창세기 39장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고,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말 ‘형통하다’는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 되어감’을 뜻합니다. 이는 요셉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요셉의 뜻과 같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어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발전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짤라흐(צלח)’가 사용됩니다. 70인역 성경에서도 같은 의미의 헬라어 ‘유오도오(εὐοδόω)’가 사용됩니다.


    우리말 ‘형통하다’는 요셉에게 적용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점점 발전해 나갔다’는 의미는 요셉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요셉은 점점 하나님의 사람에 걸맞게 자라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왜 요셉과 함께 하셨는지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요셉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요셉의 삶을 보면서, 그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고 봅니다. 요셉이 살아간 삶의 모습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모습’이었기에, 그의 삶이 점차 발전해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요셉은 어떠한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아무리 좌절하고 힘들고 억울한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요셉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악을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의 삶은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요셉은 오히려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억울함이 풀릴 것이라는 희망을 놓치지 않았기에 요셉은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또 요셉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챙겼습니다. 40장 6-8절을 보면, 파라오의 관원들이 꿈으로 인해 근심하고 있을 때, 그들의 근심을 먼저 알아차리고 말을 건넨 것이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얻었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악을 멀리했습니다. 더 나아가 주변에 있는 이들을 도왔습니다. 그렇기에 요셉은 시간이 갈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파라오의 꿈을 잘 해석해서 이집트 총리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이집트 파라오가 해몽 한 번 잘했다고 요셉을 이집트 총리로 세웠을 리는 없습니다. 해몽도 해몽이지만, 요셉이 그만큼 뛰어난 사람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하나님에 의지하여 관원들의 꿈을 해몽했고, 파라오의 꿈을 해몽했기 때문에 요셉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생각합니다. 또 창세기 45장 5절에 나타난 요셉의 고백,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으로 인해 요셉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집트 생활 속에서 요셉이 하나님을 얼마나 열심히 섬겼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요셉이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살았다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다만 요셉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대로 살아왔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도 요셉과 함께 하셨고, 그를 날마다 성장시켜주셨습니다.


    요셉이 어디에서 삶의 희망을 얻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곳에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좌절의 순간조차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형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삶의 과정이 어렵고 힘들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도 희망을 품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시는, 남의 근심을 돌아볼 수 있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 몰라도,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붙들고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희망에 부응하시며, 날마다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리십니다. 또 우리는 나날이 하나님 안에서 발전해가기에 분명히 삶의 결실과 기쁨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요셉이 맺은 결실은 이집트 총리가 되어 사회적 지위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긴 가뭄 속에서 자신의 민족을 구원한 일이 요셉의 결실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에게도 같은 결실을 맺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 결실을 향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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