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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에 친절하라, 인간성 회복하도록" 작은 거인이 남긴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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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미주중앙일보| 작성일2021-12-28 | 조회조회수 : 4,9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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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몬드 투투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 대주교가 지난 2010년 7월 수도 케이프타운에서 개최된 북 페어에서 연설을 듣고 있다.[EPA=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은 거인이자 흑ㆍ백 화해의 상징, 데스몬드 투투(별세 당시 90세) 남아공 성공회 대주교의 26일(현지시간) 선종 소식에 각국 지도자들은 애도 성명을 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가난과 뿌리깊은 인종차별 속에서 태어난 투투 대주교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영적 소명을 따랐다”며 “그의 유산은 국경과 세대를 초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도 트위터에 투투 대주교와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사진을 올리며 “나의 멘토이자 친구, 도덕적 나침반”이라고 썼다.


    투투 대주교는 1980년대 남아공의 흑백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해 싸웠다. 그 공로로 8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아파르트헤이트 백인 정권의 몰락 이후 넬슨 만델라(94~99년 재임) 정부의 과거사 청산 작업을 담당했다. 그 이후에도 남아공 정부의 실정과 부정부패를 비판하는 활동을 해왔다. 그가 꿈꾸던 남아공은 ‘무지개 국가(다인종·다양성의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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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사진 오바마 전 대통령 트위터]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투투 대주교는 평화와 전세계 세대들에 영감을 주는 우뚝 솟은 거인이었다 ”며 “아파르트헤이트의 가장 어두운 시절 그는 사회 정의와 자유, 비폭력 저항의 빛나는 표지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투투 대주교와 공동 저서를 냈던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그는 진정한 인도주의자이자 인권의 헌신적 옹호자였다”고 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그의 위대한 따뜻함과 유머를 사랑스럽게 기억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 밖에도 남아공 안팎에서 “진정한 남아공의 거인이 떠났다”(남아공 야당 민주동맹), “정의와 자유를 위한 공동 투쟁을 한 인물”(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전 대변인 하난 아슈라위), “그 덕분에 우리가 더욱 나아졌다”(미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킹 주니어 목사의 막내 딸 버니스 킹 목사)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남아공 정부는 이틀 간의 장례식을 포함한 7일 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이 기간 케이프타운의 시청 건물과 관광 명소인 테이블 마운틴 등에는 투투 대주교가 즐겨 입었던 예복 색깔인 자줏빛 조명이 점등될 예정이다.


    “나는 그 천국 가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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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몬드 투투 남아공 대주교가 1986년 1월 8일 미국 워싱턴D.C.의 남아공 대사관 밖에서 열린 군중 시위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1m68㎝ 작은 키의 거인, 킥킥거리는 웃음(giggle-like laugh)을 터뜨리곤 했던 사람. 투투 대주교를 기억하는 이들은 하나 같이 그가 농담을 즐겨했고, 유머 감각이 뛰어 났다고 회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재기 발랄하고 생동감 넘치는 투투의 연설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암울한 시기 시위나 장례식을 따뜻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그는 간명하고 쉬운 연설로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투투 대주교는 교회 안에서 성소수자(LGBTQ)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딸의 동성혼도 지지했다. 그가 2013년 성소수자 캠페인에서 “나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신을 따르지 않는다”며 “동성애를 혐오하는 천국이 있다면 나는 거절하겠다. 차라리 ‘아뇨, 죄송합니다.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던 연설이 유명하다. 투투 대주교는 이외에도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빈곤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 반대했다.


    투투 대주교는 “약자의 편에 서라”고 말해왔다. 기계적인 중립을 나쁘다고 봤다. “당신이 불의한 상황에서 중립을 취한다면 압제자의 편을 택하는 것과 같다”며 “코끼리에 꼬리가 밟힌 쥐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이 중립적 입장이라면, 쥐는 당신을 결코 중립적인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다. 그는 “당신이 있는 곳에서 작은 선을 행하라”며 “세상을 압도하는 것은 작은 선의 조각”이라는 말도 남겼다.


    “용서는 값비싼 일…백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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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오른쪽)과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AP=연합뉴스]


    투투 대주교가 남아공 역사에 남긴 메시지는 ‘화해와 용서’였다. 그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저항해 싸웠지만, 단죄만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만델라 대통령(2013년 별세)의 지명으로 투투 대주교가 이끈 진실·화해위원회(TRC)는 세계사에 남는 과거사 청산 모델이 됐다.


    1995년 12월 발족해 이듬해부터 98년 10월까지 활동한 1차 TRC(이후 2003년까지 연장)는 인종 차별 정책에 부역했던 이들의 공개적인 자기 고백과 폭로, 기록에 방점을 뒀다. 국영 방송 청문회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증언을 확인했다. 사면을 신청한 가해자들은 정치사범에 한해 면죄부를 줬다. 사면을 노린 가해자들이 앞다퉈 죄를 증언하면서 사실 관계 규명이 힘을 얻었다. TRC는 7000건 넘는 사면 신청을 받아 2500건 이상의 사면 청문회를 열었고, 1500건의 사면을 승인했다.


    이 같은 ‘고백-사면 모델’은 사법적 처벌에 방첨을 둔 독일의 뉘른베르크 방식과 대조적인 과거사 청산 방식으로 꼽힌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나치 전범들을 법정에 세워 형사 처벌하는 청산의 방식을 택했다. TRC는 피해자 2만 2000명의 진술을 받아 기록으로 남겼다. 이들에 대한 피해 배상과 회복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도 TRC가 집중한 과제였다.


    호주 ABC 방송은 “투투에게 용서와 화해는 복수, 보복에 대한 유일하고 진정으로 실행 가능한 대안이었다”며 “만델라 정부가 진실‘정의’위원회 아닌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든 이유”라고 평했다.


    투투 대주교는 “용서는 쉽게 하거나 값싼 것이 아니다”며 “용서하려는 사람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매우 비싼 과업”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평소에도 “아파르트헤이트는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상처가 된다”며 “(인종 차별적인)백인들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친절하라”는 말을 남겼다.


    미완의 과제로 남은 ‘무지개 국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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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의 입법 수도 케이프타운의 세인트루이스 대성당에서 26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 사진 옆에 꽃을 놓고 있다. [AP=연합뉴스]


    투투 대주교의 바람과는 달리 넬슨 만델라 이후 남아공의 시련은 현재 진행형이다. 94년 아파르트헤이트 폐기 이후 노골적인 법적ㆍ제도적 차별은 사라졌지만, 뿌리 깊은 경제ㆍ사회적인 불평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투투 대주교는 소수의 엘리트를 위한 정책을 편 역대 아프리카국민회의(ANC)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2011년 부정 부패 의혹이 불거진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을 향해선 “아파르트헤이트 정권보다 더 나쁘다”며 “사랑의 이름으로 당신 정부의 실패를 기원하겠다”고 비판했다. 주마 전 대통령은 투투의 예언대로 2018년 실각한 뒤 부패 혐의로 투옥됐다. 2017년 4월 케이프 타운에서 열린 주마 정부 반대 시위에 참석했을 때 투투 대주교의 나이가 86세였다.


    “후대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투투 대주교는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그는 사랑했다. 웃었다. 울었다. 용서 받았다. 용서했다. 크나큰 특권을 누렸다.(He loved. He laughed. He cried. He was forgiven. He forgave. Greatly privileged.)”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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