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성학원, 이북 선교의 개척자 '존 무어' 선교사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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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광성학교 초대 이사장, 존 무어 선교사
40여 년 간 북한 선교· 교육 선교 헌신
1백여 개 교회 개척‧ 60여 개 학교 설립
무어 선교사의 원본 서신과 보고서 발굴해 번역
한국선교 향한 열정과 고민과 담겨
[앵커]
학교법인 광성학원이 한국 선교 140주년을 맞아 초대 이사장 존 무어 선교사를 재조명하는 자료집을 발간했습니다.
무어 선교사는 북한 지역 선교와 교육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일제강점기 친일 세력에 의해 흔적이 의도적으로 지워져 역사 속에서 가리어져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요.
존 무어 선교사의 삶과 정신을 돌아봅니다.
오요셉 기자입니다.
[기자]
1903년, 미국 감리교 파송 선교사로 조선 땅에 발을 디딘 존 무어, 한국 이름 문요한 선교사.
무어 선교사는 평안남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며 이북 지역에 복음의 기틀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2일, 광성중․고등학교에서 진행된 학교법인 광성학원 개교 131주년 기념행사.
무어 선교사는 1907년 평양대부흥의 현장에 함께 했으며, 복음 전도와 더불어 교육 발전에도 힘썼습니다.
1백 여 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소학교에서부터 중· 고등학교까지 60개가 넘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특별히, 오늘날 광성중·고등학교가 된 광성학교의 초대 이사장으로 수많은 기독 인재들을 양성했습니다.
[소요한 교수 / 감리회신학대학교]
"존 무어 선교사님은 본인의 선교지만 돌봤던 게 아니라, 함께 하셨던 선교사님, 함께 했던 한국인 동역자와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이북 지역 전체에 기독교 선교의 기틀을 마련하셨고, 발전시키신 분으로서 우리는 그분을 업적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어 선교사는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 당한 후에도 고향인 오하이오주로 돌아가지 않고 LA 한인타운 근처에 살며 한인들을 돌보다 1963년 소천했습니다.
이처럼 무어 선교사가 한국 선교와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잘 알려지지 못한 건 일제시대 친일 인사들이 무어 선교사가 설립한 교회와 학교를 강탈하며 그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지웠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광성학원은 무어 선교사가 남긴 방대한 자료들을 복원해 '존 무어 자료집' 1·2권을 출간하고 '광성 역사관'을 개관했습니다.
미국 드루대학교 연합감리교 역사자료관에서 무어 선교사가 남긴 원본 서신과 보고서 등 다양한 자료들을 발굴해 번역했습니다.
자료집엔 한국 선교의 열정과 어려움, 한국 사회 변화와 복음화에 대한 긍정적 평가, 교육과 선교를 결합하기 위한 방안 등 한국 선교를 향한 무어 선교사의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소요한 교수 / 감리회신학대학교]
"거의 대부분 서신이 한국 선교를 도와달라고 하는 그런 선교 서신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존 무어 선교사님은 한국인을 위한, 한국 선교를 발전시키기 위한 그런 집념과 열정이 가득 차신 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광성학원이 발간한 존 무어 자료집.
자료집 발간에 참여한 감신대 소요한 교수는 존 무어 선교사의 서신들을 보면 수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자기희생과 연합 정신을 통해 선교의 과업을 이뤄나갔다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본받아야 할 중요한 신앙의 유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소요한 교수 / 감리회신학대학교]
"(편지를 읽어보면) 항상 고난과 숱한 포기하고 싶은 마음들이 계속 가득하셨는데 그때마다 마음을 부여잡고 불굴의 의지, 본인의 희생하는 모습을 통해서 선교를 지속하셨고, 그러한 선교가 모여서 오늘의 결실이 이뤄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편, 광성학원은 존 무어 자료집 3, 4 권을 추가로 출간하기로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존 무어 선교사의 삶과 정신을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CBS뉴스 오요셉입니다.
[영상기자 정용현] [영상편집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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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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