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김정웅 선교사 “선교의 ABC를 직접 가르쳐주신 조동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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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스파워|
작성일2020-07-11 |
조회조회수 : 3,6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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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육신의 아버님과 신학교 동기 동창이시기도 하셨던 선교의 아버지”
1976년 9월부터 태국 선교사로 파송받아 촌부리선교센터에서 사역을 해온 김정웅 선교사는 한국 세계선교의 개척자 조동진 목사의 소천 소식을 접허고 “고 조동진 목사님은 저의 선교의 아버지로 선교의 ABC를 직접 가르쳐주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 태국 선교 현장에서 한국 세계선교의 개척자 조동진 목사와 촌부리선교센터 김정웅 선교사 © 김정웅 선교사 제공
김 선교사의 부친은 목포제일교회를 담임했던 고 김일남 목사로 조동진 목사와는 장로회신학교 1회 동창이다.
김 선교사는 자신의 SNS에 “선교의 큰별 조동진 목사님을 그리며!”라는 제목의 추모의 글을 통해 “한국은 물론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나라들의 2/3 세계교회와 선교지도자들을 깨워 오늘날의 세계선교를 일으켜 놓으신 조동진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SNS를 통해 접하고 삼가 애도하며 유가족분들께 조의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저에게는 선교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걸음마를 가르쳐 주시고 태국 지도자들에게 직접 소개해 주시며 격려해 주셨고 선교를 손수 가르쳐 주셨으며 (미국)트리니티신학교의 선교학 연구를 위해 길을 열어 주시고 학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셨던 분이시기에 더더욱 그립다.”라고 애도했다.
김 선교사는 “앞서 가신 제 육신의 아버님과 신학교 동기 동창이시기도 하셨던 선교의 아버지”라며 “처음 태국 선교사로 부르셔서 다른 많은 길 중에서 선교의 길을 선택하도록 도전하셨고, 선교의 ABC를 직접 가르쳐 주시고 손수 선교지를 방문 지도해 주셨다.”고 회고했다.
또한 “(선교)현장을 직접 동행해 지도와 바른 선교관을 심어 주셨던 것에 감사를 드리며 람빵의 메모 공단을 중심한 전략을 나누기도 하셨다.”며 “처음 태국을 방문 하실 때 현지 음식을 좋아 하신다는 말씀은 들었으나 태국의 순수한 음식과 식당도 몰라 언어 학교의 선생님들과 같이 상의해 메뉴와 식당까지 소개해 주셔서 잘 먹고 그 뒤로 그 식당과 그 당시 메뉴가 우리 가족들의 기호 태국 음식이 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 선교사는 “시라차의 산기도원을 시작하기 전 소개를 할 때 기뻐하시며 한국 선교사들이 이런 금식 철야 기도운동을 소개해야 한다고 하시며 감격해 하시기도 하셨다.”며 “본부에서도 선교현장을 6개월만 안 와 보아도 의사소통의 간격이 생긴다고 하시며 현장을 직접 돌아보시는 것을 즐겨 하셨다.”고 밝혔다.
특히 “선교사 훈련을 바울의 집에서 직접 공동생활을 하게 하시며 선진 문화 훈련과 절제하며 경제적 어려운 속에서도 잘 견디는 훈련도 시키기도, 하시고 선교사뿐만 아니라 선교를 하는 교회 목사님들과 선교위원장들 훈련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하기 선교대학원의 강사로 미주 큰 교회 목회자 보다는 유명한 선교학 교수들을 초청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은 미국 신학교에서도 학생 수에 연연하지 않으시니 모인 참가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선교학 과목들을 깊이 소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한국 세계선교의 대부 고 조동진 목사 © 김정웅 선교사 제공
김 선교사는 “(고인은)한국 선교사들도 큰 그림을 가지시고 김순일 선교사님은 풀러신학교에, 신홍식 선교사는 달라스 신학교에, 이은무 선교사는 휫튼대학에, 저는 트리니티 신학교에 그리고 윤수길 선교사님은 사실 독일 튜빙겐 신학교에 보내 세계적인 선교학 전문 신학교의 정신들은 다 흡수하여 한국에서 이상적인 선교학 과정들을 전수하도록 큰 그림을 그리시고 안식년 연구도 하게 했다.”고 추모했다.
또한 “나아가 중년이 된 선교사들은 기간이 좀 오래 걸려도 다음에 기회가 없을 수 있으니 기간을 연장하고 후원교회의 불평을 다 막아 주시며 선교 지도자를 키워 주셨다.”고 밝혔다.
▲ 한국 세계선교의 큰별 조동진 목사(좌측에서 여섯번째)와 함께한 김정웅 선교사(태국, 좌측 네번째) © 김정웅 선교사 제공
이와 함께 “한국의 KIM과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을 비롯하여 AMA와 TWMA를 통해 2/3세계교회들의 선교운동을 활성화시키시고 김일성 대학에 종교학과를 세워 강의도 하셨고 모스크바 선교사로도 직접 활약하셨고 초창기에 영문 서적 출판 등을 통해 세계에 한국선교를 소개하는데도 크게 이바지 하셨고 기독교 언론과 교회 건축 등 다양한 서구 선진 문화 소개도 힘써 주셨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선교운동의 단순한 개척자 이상뿐만 아니라 선교동력가요 전략가이시며 연합 운동에 힘쓰시고 예시하시는 통찰력도 뛰어나 에든버러 대회에서 2000년까지 한국 선교사 10,000명 파송을 예언하셨고 그대로 맞아 떨어 졌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 연합에도 다방면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중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여의도 광장 집회의 총사령탑을 지도 하셨던 굉장한 조직력을 발휘 하셨던 큰 별을 잃은 아쉬움이 있다.”며 “이 모든 일들은 모두 살아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 두시고 가신 것을 그리워하며 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파워 김철영 기자
1976년 9월부터 태국 선교사로 파송받아 촌부리선교센터에서 사역을 해온 김정웅 선교사는 한국 세계선교의 개척자 조동진 목사의 소천 소식을 접허고 “고 조동진 목사님은 저의 선교의 아버지로 선교의 ABC를 직접 가르쳐주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 태국 선교 현장에서 한국 세계선교의 개척자 조동진 목사와 촌부리선교센터 김정웅 선교사 © 김정웅 선교사 제공
김 선교사의 부친은 목포제일교회를 담임했던 고 김일남 목사로 조동진 목사와는 장로회신학교 1회 동창이다.
김 선교사는 자신의 SNS에 “선교의 큰별 조동진 목사님을 그리며!”라는 제목의 추모의 글을 통해 “한국은 물론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나라들의 2/3 세계교회와 선교지도자들을 깨워 오늘날의 세계선교를 일으켜 놓으신 조동진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SNS를 통해 접하고 삼가 애도하며 유가족분들께 조의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저에게는 선교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걸음마를 가르쳐 주시고 태국 지도자들에게 직접 소개해 주시며 격려해 주셨고 선교를 손수 가르쳐 주셨으며 (미국)트리니티신학교의 선교학 연구를 위해 길을 열어 주시고 학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셨던 분이시기에 더더욱 그립다.”라고 애도했다.
김 선교사는 “앞서 가신 제 육신의 아버님과 신학교 동기 동창이시기도 하셨던 선교의 아버지”라며 “처음 태국 선교사로 부르셔서 다른 많은 길 중에서 선교의 길을 선택하도록 도전하셨고, 선교의 ABC를 직접 가르쳐 주시고 손수 선교지를 방문 지도해 주셨다.”고 회고했다.
또한 “(선교)현장을 직접 동행해 지도와 바른 선교관을 심어 주셨던 것에 감사를 드리며 람빵의 메모 공단을 중심한 전략을 나누기도 하셨다.”며 “처음 태국을 방문 하실 때 현지 음식을 좋아 하신다는 말씀은 들었으나 태국의 순수한 음식과 식당도 몰라 언어 학교의 선생님들과 같이 상의해 메뉴와 식당까지 소개해 주셔서 잘 먹고 그 뒤로 그 식당과 그 당시 메뉴가 우리 가족들의 기호 태국 음식이 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 선교사는 “시라차의 산기도원을 시작하기 전 소개를 할 때 기뻐하시며 한국 선교사들이 이런 금식 철야 기도운동을 소개해야 한다고 하시며 감격해 하시기도 하셨다.”며 “본부에서도 선교현장을 6개월만 안 와 보아도 의사소통의 간격이 생긴다고 하시며 현장을 직접 돌아보시는 것을 즐겨 하셨다.”고 밝혔다.
특히 “선교사 훈련을 바울의 집에서 직접 공동생활을 하게 하시며 선진 문화 훈련과 절제하며 경제적 어려운 속에서도 잘 견디는 훈련도 시키기도, 하시고 선교사뿐만 아니라 선교를 하는 교회 목사님들과 선교위원장들 훈련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하기 선교대학원의 강사로 미주 큰 교회 목회자 보다는 유명한 선교학 교수들을 초청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은 미국 신학교에서도 학생 수에 연연하지 않으시니 모인 참가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선교학 과목들을 깊이 소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한국 세계선교의 대부 고 조동진 목사 © 김정웅 선교사 제공
김 선교사는 “(고인은)한국 선교사들도 큰 그림을 가지시고 김순일 선교사님은 풀러신학교에, 신홍식 선교사는 달라스 신학교에, 이은무 선교사는 휫튼대학에, 저는 트리니티 신학교에 그리고 윤수길 선교사님은 사실 독일 튜빙겐 신학교에 보내 세계적인 선교학 전문 신학교의 정신들은 다 흡수하여 한국에서 이상적인 선교학 과정들을 전수하도록 큰 그림을 그리시고 안식년 연구도 하게 했다.”고 추모했다.
또한 “나아가 중년이 된 선교사들은 기간이 좀 오래 걸려도 다음에 기회가 없을 수 있으니 기간을 연장하고 후원교회의 불평을 다 막아 주시며 선교 지도자를 키워 주셨다.”고 밝혔다.
▲ 한국 세계선교의 큰별 조동진 목사(좌측에서 여섯번째)와 함께한 김정웅 선교사(태국, 좌측 네번째) © 김정웅 선교사 제공
이와 함께 “한국의 KIM과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을 비롯하여 AMA와 TWMA를 통해 2/3세계교회들의 선교운동을 활성화시키시고 김일성 대학에 종교학과를 세워 강의도 하셨고 모스크바 선교사로도 직접 활약하셨고 초창기에 영문 서적 출판 등을 통해 세계에 한국선교를 소개하는데도 크게 이바지 하셨고 기독교 언론과 교회 건축 등 다양한 서구 선진 문화 소개도 힘써 주셨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선교운동의 단순한 개척자 이상뿐만 아니라 선교동력가요 전략가이시며 연합 운동에 힘쓰시고 예시하시는 통찰력도 뛰어나 에든버러 대회에서 2000년까지 한국 선교사 10,000명 파송을 예언하셨고 그대로 맞아 떨어 졌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 연합에도 다방면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중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여의도 광장 집회의 총사령탑을 지도 하셨던 굉장한 조직력을 발휘 하셨던 큰 별을 잃은 아쉬움이 있다.”며 “이 모든 일들은 모두 살아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 두시고 가신 것을 그리워하며 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파워 김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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