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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 박순경, 한 평생 분단된 민족의 아픔을 안고 신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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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큐메니안| 작성일2020-10-27 | 조회조회수 : 8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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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본디 풀) 박순경 선생님을 기억하며


김영명 목사(상걸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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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경 선생님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제1권 구약편』 (신앙과지성사, 2014) 출판기념회 당시. 앞줄 왼쪽부터 유춘자 장로, 박순경 선생님, 최병천 장로, 뒷줄 왼쪽부터 필자, 이지영 목사, 심광섭 교수 ⓒ필자 제공



내가 박순경 박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민족통일과 기독교』(한길사, 1986)를 통해서였다. 대학시절 시대적 고민을 하던 중에 이 책을 만난 후 나는 통일신학과 여성신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 씨름해야 할 기본 과제임을 배우게 되었다.


박순경 박사는 카를 바르트 신학의 바탕 위에 민족의 정치사회적 현실인 남북의 분단문제를 해결하려는 통일신학을 정초하고 실천했다. 또한 여성신학자로서 한국여성신학의 산실인 한국여신학자협의회와 한국여성신학회를 창립하여 한국여성신학의 기초를 놓았다.


나는 1992년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총회에서 처음으로 박순경 박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후 두 번 정도 여신협 모임에서 만날 수 있었고, 언젠가 전화통화에서 몰트만이 바르트를 왜곡했으니 잘 봐야 한다고 했다.


신앙과 신학으로 새로운 방향 전환


박순경은 1923년 7월 14일 여주에서 한학자였던 아버지 박용선과 어머니 조원 사이에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만을 해온 반골기질 성향의 집안이었다. 어릴 적에 그는 어머니가 “사불범정”(사특한 귀신이 바른 것을 범하지 않는다)이라는 주문을 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13세 때 귀신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압박감에서 기독교를 선택한다. 그의 어머니는 교회 나가는 것을 엄격히 금했고, 교회에 마음껏 다니기 위해 1942년 세브란스 고등간호학교(현 연세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박순경의 민족에 대한 자각이 이 무렵에 이루어졌다. 1944년 봄 몽양 여운형을 만나는 등 민족운동가를 찾아다녔다. 좌익 민족운동가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무신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문제가 그에게 숙제로 주어졌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하자 공부하려는 열망으로 한글학당에 입학했으나 6시간의 한글 수업과 간호사 근무, 영양부족 등으로 사흘 만에 급성늑막염으로 입원하게 된다. 또한 그는 몇 달 전에 별세한 부모에 대한 못 다한 도리와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투병생활 중 어느 날 밤 홀연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 1서 4장 8절)는 성구를 회상하다가 하나님을 만난다. 이 구절은 그가 허무감과 좌절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 말이었고, 어떤 근원적인 것을 일깨워 주었고, 이를 계기로 신학을 하기로 결심하게 했다.


박순경 선생님의 학문적 여정


1946년 3월 감리교신학교에 입학하여 1948년에 졸업했다(당시 본과 3년, 전수과 2년 과정). 그는 1946년 봄 어떤 정치계의 한 여론조사 때 몽양 여운형 선생이 주도하던 ‘인민공화국’을 지지한다고 표명했다. 신학교가 발칵 뒤집히고, “빨갱이 마귀가 거룩한 하나님 동산에 틈타 들어왔다”는 물의로 감신에서 쫓겨날 뻔했으나 윤성범 교수와 학생 서너 명의 변호로 퇴학을 면했다.


감신대에서 공부할 때 동기로 이영빈, 허혁, 정대호, 유동식, 김지길, 김준영 등이 있었다. 김준영 목사는 “언제나 남색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다니던 그 양반은 미모에다 빼어난 알토의 매력적인 여학생이었어요. 그리고 이때부터 칼 바르트에 매료돼 독일어 공부에 전념했지요”라고 회상했다. 특히 이영빈, 허혁, 정대호와 함께 학회를 만들어 카를 바르트의 글을 읽고 토론했다.


박순경은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정대호는 한국전쟁으로 별세했고, 이영빈과 허혁이 대전에서 선화교회를 하면서 함께 카를 바르트의  『복음과 율법』(금용도서주식회사, 1950)을 번역했다. 이영빈 목사는 통일의 길에서 박순경이 다시 만나고, 허혁 박사는 이화여대에서 함께 교수로 있었다.


박순경은 사상적 훈련을 위하여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1949년 어느 날 비원 앞 호젓한 길을 산책하다가 문득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장 30절)는 성구를 회상하자 또 다시 놀랐고 기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구약의 의미가 아주 자명한 것으로 직각적으로 밝혀졌다.


1951년부터 성신여고·정신여고에서 영어와 독일어 교사생활을 하다가, 한국의 상황에서 신학을 추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1955년 말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65년까지 에모리대학과 뉴욕 유니언신학교를 거쳐서 드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 귀국하여 이화여대에서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을 가르쳤는데, 그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실천신학을 의미했다. 감신대 홍현설 학장의 가부장제적 습성에 의해 박순경은 감신대에 올 수 없었고, 이 사건은 유춘자, 김명현, 김순영 등 여성 후배들에게 박사학위 공부에 대한 절망과 포기의 상징이 되었다.


박순경에게 신앙은 필연적으로 선포되고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신학은 필연적으로 이 선포와 공동체를 위해서 즉 실천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카를 바르트가 『교회교의학 I/1』에서 말한 것에 충실했다. 그는 바르트 신학에 대한 책무를 『교회교의학 I/1』을 번역한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1974-76년 스위스 바젤대학과 독일 튜빙겐대학, 서베를린자유대학 등에 머물면서 서양신학을 관찰하고 역사철학과 사회철학(특히 마르크스주의)을 연구한다. 한국에서의 신학의 과제는 서양신학의 해설, 소개, 번역에만 즉 서양신학의 반복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이러한 작업을 넘어서 한국 신학의 중심은 이 민족의 삶과 문제여야 한다.


그때에 바젤대학에서 수학하던 변선환의 안내로 바르트의 무덤을 찾아갔다. 그의 무덤 앞에 헌화하고 우리식으로 네 번 큰 절을 하면서 그는 “마지막이요”라고 소리 없이 고했다. 박순경은 신학의 관심사가 키르케고르, 바르트, 칼빈 등 위대한 서양 신학자가 아니라 이 민족이라는 것을 무덤 앞에서 확인했다.


박순경에 의하면, 한국 신학의 중심은 이 민족이어야, 이 민족의 분단의 극복이어야 한다. 신학의 중심인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나라를 이 민족의 문제 상황에서 증언해야 하며, 이 문제 상황의 극복 없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증언할 수 없다.


한국 신학으로의 결단


1975년 박순경은 한국 신학을 위한 두 가지 결단을 한다. “첫째로 한국 신학은 한민족과 통일문제를 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 둘째로 한국 기독교는 사회주의를 포용함으로써 통일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상황과 반공기독교가 극복되지 않으면 한민족의 새로운 미래가 없다고 확신하며, 이 민족의 분단극복이 세계의 분단 현실의 극복을 의미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과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988년 6월 이화여대 교수직에서 정년은퇴하고 9월부터 목원대 대학원 초빙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9년 전민련 조국통일 위원으로 참가하면서 통일운동 활동이 활발해진다. 그는 1989년 12월에 통일신학동지회에 참가해 부회장직을 맡기도 한다. 그는 재일 대한기독교회가 1991년 7월 9-12일까지 주최하는 통일세미나에 참석,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 내용이 문제가 되어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통일이라는 말이 금기였던 때에 70세 노(老) 신학자 석방을 위하여 여성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이 구명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석방 노력으로 박순경은 106일만에 집행유예로 석방된다. 석방 이후 박순경은 전국연합, 자주평화통일 민족회의, 통일연대, 민주노동당 등 재야 통일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한다.


2000년 10월 9-14일까지 남측 방북단의 일원으로 그는 북한을 방문하고 왔다. 박순경은 팔순을 2003년에 넘기고도 지칠 줄 모르고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2014년 12월 17일 구순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박순경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2차 원탁회의’에서 인사말을 했다.


2014년 11월 3일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에서 박순경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제1권 구약편』(신앙과지성사, 2014)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그는 신약성서에 기초한 제2권을 집필하다가 별세했다. 그때 기념회장에서 2권을 집필 예정이라고 밝혀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들과 아버지의 영원한 통일을 이루는, 창조와 역사의 구원자 성령 어머니 하나님과 교회·민족·세계의 구원 문제를 다루는 3권은 제자 김애영 교수의 몫이라고 했다.


한국여성신학회(회장 김정숙 교수)는 2019년 6월 8일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원초 박순경의 삶과 신학: 기독교, 민족 통일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통일신학과 통일운동에 중대한 역할을 한 박순경 교수의 삶과 신학을 조명했다.


선생님,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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