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사 프랭클린의 가족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미니 시리즈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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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사진: Twitter)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피아니스트로, 솔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의 가족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이 아레사에 관한 새 미니 시리즈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아레사 프랭클린(1942-2018년)의 가족은 자신이 고인이 된 이 가수의 전기 드라마 제작에서 제외되었다고 주장했다.
프랭클린의 손녀 그레이스는 "천재: 아레사"(Genius: Aretha)를 제작하는 팀이 드라마 시리즈 제작에 참여하게 해달라는 가족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직계 가족으로서 우리는 할머니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그 어떤 것이든 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대화하지 않고 누군가의 삶을 정확하게 묘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감독하고, 촬영하는 동안, 우리는 아레사의 가족으로서 존경받지 못하고, 함께 일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지니어스에 연락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직계 가족으로서 우리는 이 영화를 지지하지 않는다. 우리는 극도로 무례함을 느끼고 우리 할머니의 삶에 관해 부정확한 점이 많을 것 같아서 여러분들도 이 영화를 지지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레사 프랭클린의 아들 케칼프(Kecalf)도 이 문제에 관해 롤링스톤과 이야기하면서, 제작팀에 대해서 그가 관찰한 것과 시리즈의 내용에 대한 의구심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BBC에 따르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유산에 관한 분쟁 이후 별도의 독립체인 "프랭클린 재산"이라는 곳으로부터 영화 제작을 허락받았다고 주장했다.
제작팀은 "아레사의 천재성에 대해서 우리는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축하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채널은 또한 "시리즈의 모든 측면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8부작 미니시리즈 "천재: 아레사"는 3월 21일에 방영되었다. 아레사 프랭클린 역은 신시아 에리보(Cynthia Erivo)가 맡아서 열연했다.
아레사 루이즈 프랭클린은 1942년 3월 25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클리어런스 프랭클린(Clarence La Vaughan Franklin) 목사는 침례교 설교자이고, 어머니 바바라 시거스(Barbara Siggers)는 복음송 가수였다. 부모는 그녀가 6살 때 헤어졌는데, 어머니는 4년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교회에서 노래를 시작했으며, 재능있는 피아니스트이자 가수이기도 했다. 14살에 이미 복음성가를 녹음했다. 작은 레코드 회사를 통해 앨범 "Songs of Faith"가 1956년에 발매되었다.
프랭클린은 또한 아버지의 순회부흥집회에서 가스펠 가수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 샘 쿡(Sam Cooke) 및 클라라 워드(Clara Ward)와 함께 공연했다.
그녀는 14살 때 어머니 대신에 동생들을 돌보게 되었으며, 2년 후 그녀는 에드워드를 낳았다. 둘 다 그녀의 성을 따랐다. 그녀는 나중에 두 명의 아들, 테드 화이트 2세(Ted White, Jr.)와 케칼프 커닝햄(Kecalf Cunningham)을 낳았다.
1960년에 그녀는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1961년에 앨범 "아레사(Aretha)"를 발표했다. 그녀는 음반이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자신의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언급하면서, 1966년 새 남편이자 매니저인 테드 화이트의 권유로 애틑랜틱 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녀는 이후 음악계 차트를 휩쓸었으며, 솔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빌보드 R&B 차트 1위곡 최다 보유자(20곡)이며,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가스펠 앨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녀의 성공은 197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디스코 열풍이 되면서 그녀의 노래는 점차 사라졌다. 차트에서 밀려나게 됐다, 1979년 애틑랜틱에서의 커리어는 끝났다. 그녀는 아리스타 레코드사(Arista Records)와 계약을 맺고, 1982년 앨범 "Jump To It"을 발표한 후 큰 성공을 거두면서 사라져가던 인기를 회복했다.
1985년에 그녀는 차트 1위로 돌아왔다. 그녀는 1987년 로큰롤 명예 전당에 입성한 최초의 여성 예술가였다.
프랭클린은 그래미상을 18회 수상, 역사상 가장 영예로운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그녀는 디트로이트 라디오 방송국에서 은퇴를 선언했지만, 얼마 후 스티브 원더(Stevie Wonder)와 함께 새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원더가 직접 쓴 노래 "The Future"를 녹음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프랭클린은 2018년 8월 16일 췌장암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