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목사님 대 우리 목사님(The Idealized Pastor Versus Our P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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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라는 존재가 생기기 시작한 이후로 목회자들에 대한 비교가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2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20세기 초에 지역교회 목사들은 잘 알려진 라디오 목사들과 비교되었다. 20세기 후반에 그들은 텔레비전 목사들과 비교되었다. 21세기부터는 팟 캐스트 목사들과 비교했다.
교회 회원은 자신이 모르는 목사에 대한 이상화 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플랫폼 성격은 종종 카리스마와 놀라운 의사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다. 교인들이 다른 목회기술이 의사소통 기술만큼이나 재능이 있다고 믿고 싶은 유혹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목사님들을 가까이서 개인적으로 본다. 우리는 그들의 은사를 보지만 또한 그들의 인성들을 본다. 그들이 인내심을 잃을 때도 우리는 그들을 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설교에서 걸려 넘어질 때도 그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완벽하지 않은 그들의 가족을 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그들의 불완전성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 플랫폼된 이상화된 목회자들은 당신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당신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당신을 안아줄 수 없다. 그들은 결혼식, 장례식, 축하, 그리고 깊은 고통의 순간을 위해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
당신의 목사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이상화된 목사는 당신을 모른다. 당신의 목사는 당신을 위해 당신 곁에 있다. 이상화된 목사는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당신의 목사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위해 기도한다. 이상화된 목사는 당신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기도할 수 없다.
우리가 목사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할 때이다.
지금이 그 때이다.
보다 적게 비판적이고 보다 많이 기도할 때이다.
보다 적게 정죄하고, 더 많이 용서할 때이다.
보다 적게 기대하고 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할 때이다.
새해의 시작은 새로운 패턴과 습관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러한 습관 중에는 목사님을 더 많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보다 덜 거칠게 평가하고, 더 열렬히 기도하는 것이 포함되기를 바란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