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 코로나19로 인해 두 자매 극적인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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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제와 고통으로 예수님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키우면"
(사진: Daniel Johnson/Methodist Health System)
최근 73세의 도리스 크리펜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네브라스카에 있는 재활 센터의 환자가 되었다. 보조 약사인 베브 보로는 20년 이상 그 시설에서 일해 왔다.
지난 7월, 베브는 환자 명단에서 도리스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50년 동안 만나지 못한 그녀의 언니였던 것이다.
둘은 이복 자매이다. 도리스는 엄마와 양부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스무 살 되던 해생후 6개월인 베브를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수년간 서로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유행병이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도리스는 앓고 있는 중에도 기자에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동생을 만난 게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우리 모두 이런 해피엔딩 스토리를 좋아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해피엔딩이 아닌 이야기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회복하지 못한 코로나19 환자의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응답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기도들에 대해선?
이 시대의 신학자 N. T. 라이트는 애통이 신앙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분노와 좌절과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시편이 성경 안에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라이트의 말대로 “어떤 사람들은 반대편에서 나와 빛으로 들어가는데... 가끔... 그들은 그냥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 속에 머문다. 하나님께서 어둠 속에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지금 <엘도라도의 꿈 : 미국 서부의 역사>(텍사스대 역사학 교수 H. W. 브랜즈 지음)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다. 그의 수려한 문장이 매번 강조하는 한 가지 사실은 선구자가 된 인생의 나약함이다. 서부로 이동하는 정착민들은 인디언의 습격을 받거나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굶주릴 가능성은 항상 존재했다. 광야에서 다리가 부러지면 감염되거나 야생동물에 의해 사망했다.
그 결과,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하나님과 이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공황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들도 선구자들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기술적이고 의학적인 발달은 선조들이 직면했던 일들로부터 우리를 분리했다. 문화적 자기 의존에서 비롯된 세속주의와 도덕적 상대주의가 우리의 영혼을 위협하고 있다.
올해의 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의 유한성을 증명하고 있다. 재물은 믿을 수 없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자기 의존은 어리석다는 걸 경제 침체가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고통을 구주의 힘을 구하는 초대장으로 받아들이면, 주님은 우리가 간절하게 원하는 영적 쇄신으로 우리를 인도하심으로써 고통을 보상해 주실 것이다.
오스왈드 체임버스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환난 없는 삶을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을 극복하도록 생명을 주신다. 긴장이 힘이다. 긴장이 없다면 힘도 없다. 당신은 하나님께 생명과 자유와 기쁨을 달라고 기도하는가? 당신이 긴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주실 수 없다. 지금 당장 긴장을 직면하라. 당신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원리를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육체적인 힘을 얻으려면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문제와 고통으로 예수님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키우면, 우리는 주님의 임재와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예레미야애가의 저자는 애통을 말하면서, 예루살렘 파괴에 대한 절망적인 슬픔으로 기준을 세운다. 어느 시점에 저자는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이라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절망 속에서 결단한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1-22).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목사의 8월 5일 칼럼 일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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