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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위치 : Home >> 칼럼 >> 윤석길의 신약산책 2017년 11월 20일 09:08 (LA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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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쉽지 않은 세상을 쉽게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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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6
13:10:52
 

도덕경 13장입니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총애나 모욕이나 깜짝 놀란듯이 대하고 큰 근심을 자기 몸처럼 귀하게 여기라


何謂寵辱若驚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하위총욕약경 총위하 득지약경 실지약경 시위총욕약경)

 

총애나 모욕이나 깜작 놀란듯이 대하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총애는 미천한 것이니 얻어도 두려워하고 잃어도 두려워하라

이것이 총애나 모욕이나 깜작 놀란 듯이 대하라는 뜻이네.


何謂貴大患若身,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하위귀대환약신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급오무신 오유하환)


큰 근심을 자기 몸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은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네

만약 내게 몸이 없다면 어떤 근심이 있겠는가?


故貴以身於爲天下, 若可以託寄天下矣  愛以身爲天下, 如何以寄天下

(고귀이신어위천하 약가이탁천하의 애이신위천하 여하이기천하)


그러므로 천하를 위하는 것보다 제 몸을 더 위한다면 그대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네

(그러나) 제 몸을 바쳐 천하 위하기를 좋아한다면 어찌 천하를 맡길 수 있겠는가?


* 앞의 세 문단은 번역에 있어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편적인 왕필본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번역에 논란이 많은 마지막 문단은 백서노자(이석명)를 따랐습니다.


최근의 베스트셀러 중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솔직히 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결국 칭찬이 모든 교육과 인간관계의 기본이 된다는 내용 아니겠습니까? 누군가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은 좋은 덕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최근 서점에 넘쳐나는 각종 실용서들이 우리를 가볍게 만들고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보다 실용서에 기초해서 설교하는 목사님들의 설교가 더 인기를 끄니 문제는 문젭니다.


우리는 관중 앞에서 춤추는 돌고래가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서는 칭찬을 경계합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개역개정 누가 6:26)


노자 역시 칭찬이나 모욕 앞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모두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범주에 따라 칭찬이 되고 모욕이 될 뿐입니다. 오늘의 칭찬이 내일의 모욕이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인격적 주체가 되어야지 다른 이의 평가에 우리 기준을 맞추어서는 안됩니다. 


근심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심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는 것은 보편화된 룰(rule)일 뿐입니다. 그러나 종교와 철학의 세계는 그 룰에 따라 사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룰을 이겨낸 사람들을 신앙의 모범으로 받아들입니다.


릴케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항상 이것만은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것은 우리들은 언제나 어려움에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려운 쪽이 바로 우리들의 몫이지요”


사도바울 역시 그의 몸의 고통(가시)이 그를 교만하지 않게 만들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 근심이 떠나가기를 바라지 않고 근심과 더불어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2:7-8)


결국 근심이 있다는 것은 몸이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초대 교회의 신학이 영혼과 육신을 나눴던 것과는 달리 노자는 근심 고민 고통의 영역을 영혼의 문제로 나누지 않고 총체적인 몸의 문제로 봅니다.

 

니체가 “나는 전적으로 몸이며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영혼은 몸에 대한 어떤 것을 일컫는 말에 불과하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는 발견을 노자는 일찍이 한 셈입니다.


그러므로 칭찬과 모욕과 근심이 우리 삶을 주관하도록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설 때 참 나의 존재가 발견됩니다. 


잘 나가다가 노자는 항상 뒤에 가서 우리를 헷갈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위하는 것보다 제 몸을 더 위한다면 그대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네”


자기 자신을 위하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기다니요.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라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연한 말입니다. 천하와 같은 우주적 존재는 내가 위하고 말고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 안에 맡겨 살아가는 내 자신에 더욱 솔직해 질 때 세계와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입니다.

 

불교를 나눌 때 흔히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나눕니다. 자기 구원에 집착하는 것이 소승이고 이타적인 것이 대승이라고 우리는 도덕시간에 배웠습니다. 그러나 소승의 세계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내 몸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주제에 어디 감히 이웃과 세계와 역사와 우주를 말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노자도 바로 이와 같은 생각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구절은 왕필에 기초한 도올 김용옥의 번역이 틀렸습니다. 도올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자기 몸을 아끼는 것처럼 천하를 아끼는 자에게는 정녕코 천하를 맡길 수 있는 것이다”


노자는 이런 식으로 중학교 도덕선생님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천하는 바로 윗 구절과 마찬가지로  내가 아끼고 말고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몸을 바쳐 천하를 위한다는” 헛된 정치가들의 말을 조롱하는 것이 노자의 본심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본래의 노자 정신에 비추어 보면 이석명의 번역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 몸을 바쳐 천하 위하기를 좋아한다면 어찌 천하를 맡길 수 있겠는가?”


*************

언젠가 한국 신문에 소승기독교라는 글을 실은 적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쓴 글이라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대로 올립니다. 다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7 도덕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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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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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너희가 배부를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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