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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 목 작성일
386 악마와의 눈싸움 1
곽건용의 구약 산책 →블로그가기
2015.10.29
15:55:03
왜 세상에는 선이 있을까?

사람들은 “왜 세상에는 악이 있을까?”라도 묻습니다. 마치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게 이상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세상에는 선이 있는가?”라고 묻지는 않습니다. 마치 세상에 선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정말 세상에 선이 있는 게 당연합니까? 그걸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여겨도 되는 겁니까? 선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고 악이 존재하는 것은 이상합니까?

세상은 본래 선했는데 점점 악해지는 걸까요? 아니면 본래 악했는데 그나마 조금씩 선해지는 걸까요? 성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세상에 악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건 아닙니다. 선악과는 악을 행하게 하는 열매가 아니라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가 아닙니까. 그들이 따먹은 열매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였으니 그걸 먹기 전에는 선과 악의 구별이 없었고 그걸 먹은 후에 비로소 선악을 ‘구별’하게 됐다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그들 때문에 악이 세상에 들어왔다면 하와를 유혹해서 선악과를 먹게 만든 뱀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뱀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선한 존재였나요 악한 존재였나요? 물론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래서 처벌을 받았습니다. 낙원에서 추방당한 게 그것 아닙니까. 그 때문에 아담은 땀 흘리며 노동하게 됐고 하와는 산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왜 세상에는 악이 있을까?”라는 질문은 “왜 세상에는 선이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물어야 합니다.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듯 선이 존재하는 것 역시 당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하긴 뭐 하지만 좌우간 둘은 나란히 갑니다. 선이 없다면 악이 있을 수 없고 악이 없으면 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악이 있기 때문에 선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악의 문제는 선의 문제와 분리해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악의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까닭은 세상에 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선이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의 악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겁니다. 악이 악인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악을 인식하고 악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유는 선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린 악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쉽게’ 생각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악을 극복하거나 이기기 어려운 줄은 우리 모두 압니다. 하지만 그게 ‘왜’ 그렇게 이기기 어려운지는 모릅니다. 왜 우리는 악과 싸우면 대개의 경우엔 질까요? 왜 우리는 악을 이기지 못할까요? 악이란 게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복합적입니다. 그런데 우린 악을 실제보다 훨씬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가 약해서, 우리가 가진 힘이 악의 힘보다 약해서 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한편으론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틀리기도 합니다.

‘악’은 매우 복잡하다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악과 싸워서 지면 대개는 ‘신앙이 약해서’ 진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한편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의지가 약해서’ 악에게 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인이 악과 싸워서 지는 것은 ‘신앙만’ 갖고 싸웠기 때문이고 의지를 갖고 싸워서 지는 사람은 ‘의지만’ 갖고 싸웠기 때문에 진 겁니다. 그런데 우린 그걸 모릅니다. 악이란 것은, 곧 악마라는 존재는 매우 복잡한 성격을 갖고 있고 무척 다양한 무기를 갖고 있으므로 신앙이나 의지만 갖고는 이길 수 없습니다. 악과 싸워 이기려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무기를 총동원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도 이길까 말까 한 존재가 바로 악마입니다. 그런데 우린 이걸 모르고 신앙이나 의지만 갖고 싸우려 했기 때문에 이길 수 없었던 겁니다. 여기서 예수님만 잘 믿으면 다 이길 수 있다, 그분이 대신 우릴 위해 싸워주시기 때문에 우린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고 믿는 사람은 여기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기독교인은 그런 얌체 같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스캇 펙(Scott Peck)이란 유명한 저자가 있습니다. 그는 정신과의사지만 제가 보기에는 정신과 의사 이상입니다. 그는 뉴욕타임스 서평 사상 최장수 베스트셀러인 『아직도 가야 할 길 The Road Less Traveled』의 저자로서 그 외에도 많은 책을 쓴 유명한 저자입니다. 저는 그의 저서 『거짓의 사람들 People of the Lie』에 나오는 얘기를 소개하겠습니다. 펙 박사는 기독교인으로서 정신병을 악의 문제와 연결시킨 사람입니다.

하루는 조지라는 사람에 펙 박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뛰어난 세일즈맨인데 하루는 출장을 갔다가 그 도시 명소인 성당을 구경하게 됐습니다. 성당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출입문 옆에 작은 헌금함이 있는 게 아닙니까. 가톨릭교인도 아닌 그는 교회에는 한 푼도 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현듯 거기서 그냥 나갔다가는 그 어떤 액운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는 스스로 남 못지않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그런 불안과 두려움이 드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좌우간 그는 지갑을 뒤져서 동전으로 55센트를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충격적인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게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생각이어서 그는 잠시 정신을 잃고 멍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때 그의 뇌리에 글자 하나하나 새겨지듯이 떠오른 생각은 “너는 55세에 죽을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줄은 꿈에도 안 해봤던 그는 당황한 나머지 얼른 지갑을 뒤져서 5불짜리 한 장과 1불짜리 두 장을 헌금함에 넣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는 곧 그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두 주일 후 이번에는 직접 운전해서 출장을 갔는데 길가에 제한속도 45마일이란 표지판이 나왔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그는 “너는 45세에 죽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또 불현듯 떠올랐다는 겁니다. 그가 호텔에 도착해서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 거기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 말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비슷한 일은 반복됐습니다. 일주일 쯤 후 그는 길을 가다가 업튼(Upton)이란 표지판을 봤는데 문득 “너는 업튼이란 사람에게 살해당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한 낡은 기차역을 지나갈 때는 “저 기차역 천장이 무너져 너는 죽을 거다.”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다리를 건널 때는 “네가 저 다리를 건너는 마지막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밤중에 확인해보려고 70마일을 달려서 그 다리를 건너봤다는 겁니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요. 그날 비로소 그는 깊은 잠을 잘 수 있었고 그 후로 두 달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귀갓길에 그는 또 “차가 구덩이에 빠져서 넌 죽을 거다.”라는 생각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었지만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진짜일지 모른다, 다리에서 무사했던 것은 자기 판단을 흐리려는 술책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눈에 띠게 수척해졌고 체중도 7킬로나 줄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펙 박사를 찾아와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사건의 전말을 털어놨습니다. 박사가 보기엔 그는 전형적인 강박신경증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지에게 강박신경증세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러자 조지는 비로소 안심하더랍니다. 자기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증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안심이 되더라는 겁니다. 그 후로 그는 박사를 정기적으로 만나 상담하면서 병세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증세가 잦아들자 그는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혼자 감당할 수 있으니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거였습니다. 박사는 조지를 말렸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이틀 뒤에 조지가 박사에게 전화했습니다. 강박증이 또 찾아왔다는 겁니다. “너는 급회전하다가 길 가던 사람을 쳐 죽일 거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더랍니다.

그때서야 조지는 자신에 대해 박사에게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 아내와의 관계 등등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는 겁니다. 그는 어렸을 때 외조부 댁에서 2년 정도 살았는데 그때 외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매주 거르지 않고 손찌검을 했다는 거지요. 그때 조지는 할머니가 혹시 죽지나 않을까 걱정하곤 했답니다. 박사는 그런 일들이 조지가 겪고 있는 강박증의 원인이 됐다고 봤습니다. 박사가 그의 얘기를 듣고 나서 조지는 자기 인생의 실체들과 맞부딪치는 걸 피해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걸 피하려고 강박 증상을 이용한다는 겁니다. 그 증상이 연막 약할을 해서 근본적인 문제와 맞서는 걸 막아줬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강박증상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리가 끊어져서 죽고 천장이 무너져서 죽고 45세에 죽고 55세에 죽고 등등.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공포와 맞부딪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단순히 피하려고만 했다는 겁니다. 박사는 이런 얘기들을 그에게 자세히 해줬지만 그는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악마와 계약을 맺다

그는 그 후로도 계속 강박증에 시달렸는데 넉 달이 지난 어느 날 그가 밝은 얼굴로 박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강박증세가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보기에 그는 여전히 자기의 고통스런 과거와 맞부딪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면담이 끝나갈 무렵 그는 느닷없이 “선생님은 악마의 존재를 믿습니까?”라고 묻더랍니다. 의사가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묻자 그는 그저 호기심이라고 답했지만 의사는 조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답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런 질문을 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조지는 그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몇 번의 면담을 하는 동안 조지는 매우 밝고 명랑했다고 합니다. 차림새로 깔끔했고요. 그런 그가 의사에게 하루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고백할 게 있습니다.” 라더니 그는 의사가 자기 강박증을 치료하려고 대단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혼자라도 뭔가 해야만 했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악마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진짜 악마를 믿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도 뭔가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악마와 이런 계약을 맺었습니다. ‘만약 내가 강박 증세에 이끌려 다시 그곳으로 간다면 악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생각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무슨 얘긴지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는 자기 강박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그 장소에 가보곤 했는데 계약에 따라서 이제부터 그런 행동을 하면 악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생각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할 터이므로 그곳에 가지 말아야 할 강력한 동기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허구입니다. 곧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조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허구였던 겁니다.

그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계약을 맺었다는 생각이 효험이 있더랍니다. 실제 그는 악마를 믿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계약을 맺은 데 대해 죄책감이 느껴지더란 겁니다. 하지만 효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죄책감은 감수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박사는 그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내담자를 앞에 두고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생각에 빠졌습니다. 대체 ‘강박’이 뭡니까? 그걸 떨쳐버리려고, 곧 자체가 현실이 아닌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악마와 계약을 맺고 또 거기서 효험을 보고 있다니 대체 이 강박이란 게 뭐냐 말입니다.

박사가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조지는 또 한 번 그를 충격에 몰아넣는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죄책감을 갖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악마와 맺은 계약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악마를 믿지 않기 때문에 만약 그 장소로 돌아갈 경우 악마가 정말 저는 죽게 할 것인지 확실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걸 해결하려면 별도의 보험 있어야 했습니다. 제가 그곳으로 돌아가는 걸 확실히 막아줄 수 뭔가가 필요했지요. 그래서 저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 크리스토퍼를 걸었죠. 만일 내가 계약을 깨고 그리로 돌아간다면 나만 죽는 게 아니라 아들도 죽는다고 말입니다. 이제 제가 돌아갈 수 없는 이유가 뭔지 아셨을 겁니다. 설령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는 아들을 놓고 모험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거든요.”

그 말을 듣고 의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조지와 같은 환자는 없었습니다. 강박증을 이기려고 악마와 계약을 하고, 게다가 사랑하는 아들까지 건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답니다. 조지는 그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의사는 그를 만류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자기 생각을 얘기해주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한참 기다려도 의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언제 얘기하시렵니까?”라고 외쳤습니다. 그때서야 의사는 “조지, 당신에게 죄책감이 든다니 참 다행이네요.”라는 말로 얘길 시작했다. 그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2주일 후에 계속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악마의 존재를 믿습니까? 세상에 악의 존재한다는 것은 대부분 믿습니다. 드물지 않게 악을 경험하니까 말입니다. 물론 악의 존재를 믿지만 악마는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악마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냈다고 믿는 겁니다.

저는 7-8년 전까지만 해도 악마를 믿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약성서에는 악마가 등장합니다. 신약성서는 악마의 존재를 전제하고 얘기를 전개합니다. 저는 그런 얘기는 죄다 그 시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을 뿐, 현대인에게 믿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악마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에는 사람의 통제를 벗어난 악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저도 모르겠는데 신약시대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악마 또는 사탄이라고 부른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곽건용 목사(향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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