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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16:26:56

미가 4:1-5

 

미가는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 예언자

오늘은 미가서 강해 세 번째 설교입니다. 미가는 자신의 사명이 “거역하기만 하는 야곱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고 못할 짓만 하는 이스라엘의 죄를 규탄하는 것”(3:8)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는 이와 같은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특히 지도자들과 권력자들의 죄를 듣기 거북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규탄했습니다.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이다.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 것으로 만든다. 집의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2:1-2).

어떻습니까? 요즘 얘기 같지 않나요? 이 말을 그 옛날 미가 선지가가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요즘 누가 한 말로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습니다. 좌우간 미가는 이스라엘이 이런 죄를 저질렀으니 야훼 하나님에게 징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가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나 야훼가 말한다.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계획하였으니 이 재앙을 너희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거만하게 걸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처럼 견디기 어려운 재앙의 때가 될 것이다(2:3)

살려 달라고 야훼께 부르짖을 날이 그들에게 온다. 그러나 야훼께서 그들의 호소를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이 그렇듯 악을 저질렀으니 야훼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 것이다. 예언자라는 자들이 나의 백성을 속이고 있다.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평화를 외치고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면 전쟁이 다가온다고 협박한다. 예언자들아, 너희의 날이 끝났다. 이미 날이 저물었다. 내 백성을 곁길로 이끌었으니 너희가 다시는 환상을 못 볼 것이고 다시는 예언을 하지 못할 것이다(3:4-6).

과연 미가답지 않습니까. 상대를 가리지 않고, 권력자라고 해서 주춤거리지도 않고 거침없이 비판의 칼을 휘두른 미가다운 추상같은 선언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백성들의 호소를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실 거랍니다. 예언자들에게는 그들의 날이 이미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날이 저물었다고 말입니다. 돌이키고 회개할 기회가 더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미가가 돌변하다!

그런데 오늘 읽은 미가서 4장의 말씀은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권력자들과 사제들, 예언자들을 가차 없이 비판하던 그가 이런 말을 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추상같은 심판을 선언했던 미가가 말입니다.

그 날이 오면 야훼의 성전이 서 있는 야훼의 산이 산들 가운데서 가장 높이 솟아서 모든 언덕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우뚝 설 것이다. 민족들이 구름처럼 그리로 몰려올 것이다. 민족마다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야훼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야훼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야훼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4:1-2).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좌우간 그 날이 오면 뭇 민족이 야훼의 성전이 서 있는 예루살렘으로 구름처럼 몰려들 거랍니다. 그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야훼의 산으로 올라가자고 할 것이랍니다. 바로 앞에서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요즘 이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라고 할 겁니다. 게다가 지난 주일에 했듯이 그는 예루살렘의 심판을 선언한 최초의 예언자였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180도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정의를 싫어하고 곧은 것을 구부리는 자들에 대해서 뜨겁게 타오르던 분노가 어떻게 아침햇살에 안개 사라지듯 사라질 수 있는가 말입니다. 예언자가 미쳤을까요? 돌았습니까? 그게 아니면 미가도 삯을 받아야 율법을 말하는 거짓 제사장이나 돈을 받아야 계시를 말하는 허접한 예언자가 되어 버렸을까요? 아니면 지도자들과 권력자들이 갑자기 집단으로 회개했을까요? 그래서 미가가 심판을 외칠 필요도 없고 분노를 발할 이유도 없어졌을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언서에서는 이렇게 분위기가 급변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봅니다. 심판과 멸망을 선포하던 예언자가 갑작스럽게 용서와 구원을 선포하는 경우 말입니다. 예언서를 읽다가 이런 경우를 만나면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왜 갑자기 이러나? 왜 갑자기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질까?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일으켰을까?

이렇게 변화한 것이 미가가 미쳤거나 매수되어 뇌물을 받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권력자들이 집단으로 회개했기 때문은 물론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좀처럼 회개하지 않습니다. 많이 소유한 사람이 회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라, 많이 가진 사람이나 적게 가진 사람이나 변하거나 회개하는 데 차이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많이 가진 사람이 회개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권력자들이 변하는 거 보신 적 있습니까? 그들이 진심으로 회개하는 걸 보신 적 있습니까? 저는 그런 걸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웬만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 미가의 메시지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왜 멸망과 심판의 메시지가 갑자기 용서와 구원의 메시지로 변했는가 말입니다. 세상에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이 있던가요? 그런 일은 없지요. 그 어떤 변화도, 아무리 작은 변화도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럼 미가의 변화에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누군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변했기 때문에 미가의 메시지가 변했다는 얘기입니다. 안 그랬으면 추상같던 그의 메시지가 변할 리 없습니다.

누가 변했을까요? 누가 변했기에 메시지가 이렇게 180도 달라졌는가 말입니다.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이 변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기 때문에 미가의 메시지가 심판에서 구원으로 바뀐 걸까요? 하지만 미가서 전체를 잘 읽어봐도 백성들이 회개했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이 시기에 그들이 회개했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둘째로 미가가 변했을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미가의 메시지가 변했으니 그가 변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지 않습니다. 예언자가 전적으로 타율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백성에게는 그렇게 살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니 회개하라고 외쳤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백성들이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거나 완전히 멸하지는 말아 달라도 호소할 뿐, 전해야 할 메시지는 자기 마음대로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7장 18절 이하에서 하나님에게 애원합니다.

야훼님, 야훼 같으신 하나님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야훼께서는 죄악을 사유(赦宥)하시며 살아남은 야훼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진노하시되 그 노여움을 언제까지나 품고 계시지는 않고 기꺼이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 야훼께서 다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야훼의 발로 밟아서 저 바다 밑 깊은 곳으로 던지십니다(7:18-19).

하나님이 변했다!

이제 누가 남아 있습니까? 하나님이 남아 있지요. 그렇습니다. 예언자의 메시지가 변한 것은 하나님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변한 쪽은 하나님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이 변하다니, 무슨 말이냐고 깜짝 놀라서 말할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도록 변하지 않는 분인데 그런 하나님이 변하긴 왜 변하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를 잘 읽어보면 하나님은 영원불변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칙이나 질서가 아니라 인격적인 분입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분입니다. 하느님이 영원불변한 분이란 것은 시편 같은 찬양에 등장하는 시적인 표현일 뿐, 사람의 역사와 일상적인 삶에서 하나님은 변할 수 있는 분이고 실제로도 변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계획했다가도 변수가 생기면 그것을 바꾸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대화가 가능하고 소통이 가능한 인격적인 분이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으려면 대화는 왜 하고 소통을 뭣 때문에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고 긍휼의 하나님이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했듯이 하나님은 심장에서 피를 쏟을 정도로 긍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백성이 저지르는 죄악 때문에 분노하실 뿐 아니라 아파하시는 분입니다. 한자로 ‘긍휼’(矜恤)이라고 할 때 ‘휼’자는 심장에서 피를 흘린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하나님도 당신 백성이 악을 행하고 회개하지 않아서 심판하실 때 심장에서 피를 흘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신다는 겁니다.

구약학자들은 미가서의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는 실제로 미가가 활동했던 기원전 8세기에 선포된 메시지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후대에 전해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예언자의 입에서 이렇듯 정반대되는 말이 나올 수는 없기 때문에 미가보다 후대에 살았던 익명의 예언자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종료된 후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추가했다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는 이런 식의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해석이 올바른 성서해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심판과 징벌을 선포하는 사람은 같은 입으로 용서와 구원을 선포할 수 없습니까? 저는 그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주일에 말씀했듯이 예언자는 하나님의 심장에 들어가 본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장이 타오르는 분노와 복받치는 연민과 사랑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도 때로는 분노의 메시지를 전했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사랑과 자비의 메시지를 전했던 겁니다. 그는 하나님의 분노를 자기의 분노처럼 경험했고 하나님의 사랑도 자기의 사랑처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심장에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할 수만 있으면 용서해주고 싶으신 겁니다.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려는 기미만 보이면 그들을 용서하고 싶으신 겁니다.

예언자는 이것을 봤고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던 겁니다.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갈지자걸음을 걸었으며 상반되는 메시지를 전했던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미가와 같은 예언자가 아닙니다. 물론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좌우간 미가와 우리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언자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곽건용 목사(향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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